“비상 항공기에 착륙 양보 거부”… 中, 한국인 기장 면허취소 처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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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31일 03시 00분


중국 정부가 이달 중순 상하이(上海)에서 발생한 중국 민항기의 ‘착륙 양보 거부’ 사건의 책임을 물어 한국인 기장의 면허를 취소하기로 했다. 해당 기장은 “정부 조사가 부실한 데다 편파적이었다”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 누리꾼들은 한국인 기장의 신원을 파헤치는 ‘인육수색(人肉搜索)’을 벌이면서 이번 사건과는 상관없는 또 다른 한국인 여성 부기장을 지목해 2차 피해도 우려되고 있다.

중국민항관리국은 상하이 훙차오 공항에서 13일 발생한 ‘착륙 양보 거부 사건’과 관련한 진상 조사 결과를 30일 발표했다. 중신(中新)망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관리국은 지샹(吉祥)항공 소속 오모 기장이 긴급 착륙이 필요한 다른 항공기를 무시하고 활주로에 먼저 착륙해 대형 사고를 일으킬 뻔했다며 조종사 면허 취소 처분을 내리기로 했다고 밝혔다. 중국인 부기장에 대해서는 6개월 면허 정지 처분을 내리기로 했다.

민항관리국이 밝힌 사건 개요에 따르면 13일 상하이 상공에는 항공기 20여 대가 착륙을 못하고 선회하고 있었다. 천둥번개가 치는 악천후로 이착륙이 원활하지 않아서였다. 카타르 도하에서 출발한 카타르항공 소속 QR888기도 연료 부족으로 목적지인 푸둥 공항 대신 상대적으로 덜 혼잡한 훙차오 공항에 긴급 착륙하겠다고 관제소에 신고했다. 당시 기장은 “5분 분량 연료밖에 없다”고 알렸다.

관제소는 즉각 다른 항공기들에 착륙을 양보하라고 지시했다. 상공의 항공기들은 관제소의 지시에 따라 항로를 비워줬지만 막 착륙항로에 들어섰던 지샹항공 HO1112기는 “우리도 4분 분량밖에 없다”며 양보를 거부했다.

그러자 QR888기는 가장 위급한 상황에 기장이 관제소에 알리는 신호인 메이데이(긴급 구조 신호)를 선포했고 관제소는 HO1112기에 착륙 양보를 6번이나 지시했다. 그럼에도 HO1112기는 착륙을 강행했고, QR888기는 4분 뒤 활주로에 내렸다. 관리국은 “조사 결과 HO1112기에는 당시 42분 분량(2900kg)의 연료가 남아 있던 것으로 밝혀졌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오 기장은 30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관제소로부터 첫 양보 지시가 전달될 때 우리 비행기는 이미 관제소로부터 ‘넘버 1’(가장 먼저 착륙) 허락을 받아 착륙항로에 접어드는 찰나였다”며 “착륙을 포기하고 다시 선회하면 우리의 안전도 보장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착륙항로 진입에서 착륙까지는 통상 5분가량이 걸린다. 오 기장은 또 “카타르항공과의 착륙 시점이 4분밖에 차이 나지 않았다고 하는데 앞뒤 비행기의 정상적인 착륙 격차가 2분에 불과한 공항도 많다”고 말했다.

연료 잔량을 속였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나중에 알고 보니 중국인 부기장이 중국어로 관제소에 그렇게 말한 것”이라며 “5분 분량밖에 없다던 카타르항공도 조사 결과 18분 분량이나 남아 있었는데 우리만 문제 삼았다. 지샹항공과 관리국 간 갈등, 최근 외국인 기장이 급증하는 데 따른 경고의 의미가 있지 않나 싶다”고 주장했다.

오 기장은 한국의 모 항공사에서 부기장과 비행교관을 지낸 뒤 에어아라비아항공을 거쳐 2년 전부터 지샹항공에서 근무하고 있다. 중국 항공사에 근무 중인 한 한국인 조종사는 “오 기장이 관제소의 지시를 거부한 건 분명한 잘못”이라면서도 “하지만 당시 정황과 조사 방식을 보면 개운치 않은 면이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사건이 보도되자 중국 누리꾼들은 지샹항공에 근무 중인 다른 한국인 여성 부기장을 해당 기장이라고 지목하며 신상을 공개하고 사진까지 돌리며 비난을 퍼붓고 있다.

베이징=고기정 특파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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