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잠든 새벽, 서울 강남구 개포동 SH공사 건물 1층 로비에서는 신도 수십 명이 부르는 찬송가가 울려 퍼졌다. 깊은 밤에 교회가 아닌 공공기관 로비에서 예배하는 이들은 송파구 문정지구 거주민. 문정지구 재개발과 관련해 SH공사와 송파구가 7월 5일 이들이 살고 있던 무허가 건물을 강제철거하자 이곳으로 몰려와 잠을 자며 두 달 넘게 장기 농성을 벌이고 있다. 시위대는 “SH공사의 이주 대책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며 임대아파트 대신 아파트 분양권을 달라고 주장하고 있다. ▶본보 6월 14일자 A16면 참조 A16면 ‘벌통 알박기’ 떠들썩했던 문정지구 지금은…
○ 서울판 ‘강정마을’ 되나
농성이 시작된 뒤 2주가 지나자 북한인권단체 연합회 공동대표 서경석 목사와 기독교사회책임 사무총장 김규호 목사가 신도들을 데려와 로비에서 시위대와 함께 예배를 시작했다. 수십 명에 이르는 시위대가 로비 점거를 계속하자 공사 측은 문정지구 소유주 24명을 수서경찰서에 퇴거불응 혐의로 고발했다. 경찰은 이들에게 세 차례에 걸쳐 출석요구서를 보냈지만 아직까지 응하지 않고 있다. 경찰은 숙박 농성을 이어가는 20명이 계속 출석에 응하지 않으면 체포영장 신청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던 무허가 건축물이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보상법’에 따라 분양권을 받을 수 있는 1989년 이전인 1985년경에 지어졌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LH공사(옛 주택공사)는 1989년 이전에 지어진 무허가 건축물 소유주에게 분양아파트를 제공하지만 SH공사는 규정이 달라 제공하지 않고 있다. 시위대는 특히 국민권익위원회가 2009년 ‘문정지구 무허가 건물 소유주에게 분양아파트를 공급할 것을 시정권고한다’고 한 결정을 근거로 SH공사의 임대아파트 지급은 부당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무허가 건축물에 대해 평균 2500만 원씩 보상받았다. SH공사는 이들에게 월 20만∼30만 원의 임대료로 최장 20년까지 살 수 있는 임대아파트 입주권을 제시했지만 이들은 분양권을 달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분양권을 받으려면 3억∼3억5000만 원을 내야 한다. 이처럼 거액을 추가로 부담해야 하지만 분양권을 요구하는 이유는 분양 아파트를 되팔면 1억∼1억5000만 원의 시세 차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시세 차익은 부동산 시황에 따라 이보다 크게 줄 수도 있다.
○ “원칙에 어긋나는 소급적용은 안 돼”
SH공사는 2010년 9월 국민권익위 권고와 서울시의회의 청원심사에 따라 무허가 건물 소유주에게 분양권을 주는 기준을 ‘1982년 이전’에서 LH공사처럼 ‘1989년 이전’ 건축물로 확대했다. 그러나 국민권익위의 권고가 있기 전인 2009년 10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이미 보상이 끝난 문정마을 거주민에게는 이 기준을 소급 적용해 분양권을 줄 수는 없다는 태도다.
이들에게 분양권을 주게 되면 이주대책을 공고할 당시 적용한 원칙을 스스로 깨는 것인 데다 다른 사업지구에서도 유사한 요구가 제기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대법원은 이와 관련해 2009년 ‘보상금을 지급하는 행정처분을 내릴 당시 정한 기준에 따르는 것이 원칙이며 소급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고희복 SH공사 보상팀장은 “공공사업을 시행하면서 원칙을 따르지 않으면 신뢰도가 떨어져 또 다른 부작용을 낳게 된다”며 “시위대에게 행정소송을 통해 시비를 가리자고 제안했지만 거절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시위에 참여한 외부세력 중 하나인 재개발종교부지 대책위원회의 강사근 위원장은 “대법원 판례는 받아들일 수 없다”며 “소송해도 패소할 여지가 커 문정지구에서 쫓겨난 거주민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수단으로 숙박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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