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노원구의 한 아파트 23층에 사는 김모 씨는 최근 잠을 자던 중 갑자기 천장에서 들린 ‘푸드덕’ 소리에 놀라 잠을 깼다. 불을 켜자마자 침대 위로 떨어진 시커먼 물체는 다름 아닌 박쥐. 김 씨는 “안방에서 날아다니는 모습을 보니 양 날개 길이가 40cm는 족히 돼 보였다”며 “너무 놀라 경비 아저씨에게 부탁해 창 밖으로 날려 보냈다”고 말했다.
경기 수원역 인근의 고층 아파트에 사는 신모 씨(33)도 지난달 집 안을 날아다니는 박쥐를 보고 기겁해 집 밖으로 피신했다. 신 씨는 “며칠 전부터 집 안에서 ‘찍찍’ 하는 소리가 나는 것이 이상했는데 어느 날 보니 짙은 회색 박쥐 한 마리가 방바닥을 기어 다니고 있었다”며 “살충제를 뿌리고 방문을 잠갔지만 불안한 마음에 도저히 집에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최근 도심 아파트나 주택가에서 발견된 박쥐들. 한국자연환경연구소 직원이 생포한 박쥐를 손에 잡은 모습(위)과 지난달 31일 전남 광양시의 한 아파트 창문 방충망에 박쥐가 이틀 이상 매달려 있던 모습. 한국자연환경연구소, 이순영 씨 제공최근 도심 속 아파트나 빌딩촌에 야생 박쥐가 출몰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창문 방충망에 매달려 있는 것은 물론이고 출입문이나 갈라진 벽 틈새 등을 이용해 집 안까지 들어오고 있는 것. 최근 박쥐 침입 신고를 받고 출동한 서울 강서구조대 박성태 소방장은 “박쥐는 날개를 접으면 크기가 작기 때문에 좁은 틈새로도 쉽게 집 안으로 들어올 수 있고 숨기도 한다”며 “주택가 또는 아파트에서 ‘새가 출몰했다’는 신고를 받고 가면 박쥐일 때가 많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최근 야생 박쥐가 서식지와 먹이를 찾아 도심으로 날아오는 것으로 보고 있다. 박쥐 연구전문가인 손성원 한국자연환경연구소 고문은 “1980년대 이전에는 기와집 처마 밑에 매달려 사는 집박쥐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며 “주택개량 이후 대거 들어선 도시 아파트를 박쥐들이 새로운 서식지로 삼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안보 및 폐수 문제로 상당수 동굴이 폐쇄되면서 박쥐가 서식지를 잃은 것도 또 다른 이유다.
먹이 부족도 한 원인이다. 손 고문은 “박쥐의 먹이인 모기나 나방 등 곤충은 밤에도 불빛이 환한 주택가 지역으로 많이 몰린다”며 “박쥐가 자연스레 먹이를 따라 이동하다 보니 도심에 나타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박쥐가 실내로 들어오더라도 인체에 직접적인 해를 끼치진 않는다는 게 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주요 먹이가 모기와 나방, 딱정벌레 등이기 때문. 또 한국에서 발견된 박쥐 중 광견병을 옮기는 개체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박쥐의 오줌 냄새가 많이 고약하기 때문에 집 안에서 박쥐를 발견한 경우 즉각 내보내라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박쥐는 살충제 성분만으로 쉽게 죽지는 않기 때문에 주위에 조금만 뿌려 집 밖으로 내쫓는 것이 좋다.
이수일 경남환경교육원 박사는 “박쥐는 최근 개체수가 많이 줄어든 데다 보호종인 경우가 있기 때문에 무조건 살충제를 뿌리거나 때려서 죽이기보다는 헝겊 등으로 감싸 방생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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