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발생한 전국의 정전대란은 여느 해와 다른 때늦은 무더위로 전력 수요가 예상치를 훌쩍 넘어섰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이 정부의 전력수급 예측 실패와 주먹구구식 대처, 시민들의 과다한 전력 사용에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모두가 책임이 있는 ‘인재(人災)’라는 것이다.
○ 때늦은 무더위에 냉방 수요 폭증
이날 전국은 추석 연휴 후의 날씨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무더웠다. 기상청에 따르면 이날 낮 최고기온은 서울 31.3도, 수원 30.8도, 문산 30.8도, 청주 31.6도, 충주 30.9도, 대전 30.8도, 광주 33.3도 등으로 전국 대부분 지역의 낮기온이 30도를 넘어섰다. 특히 대구는 34.2도를 기록해 9월 중순 기온으로는 1907년 관측 이래 104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남 구례도 낮 최고기온이 34.7도까지 올라갔다. 전남과 경북 경남지역에는 폭염주의보가 내려졌다.
전국의 전력 수요는 오후에 들어서며 빠르게 올라갔다. 오후 3시에는 당초 예상(6400만 kW)보다 320만 kW나 많아졌다. 예비전력은 위험수준인 400만 kW 밑으로 떨어졌다. 이는 전국이 정전 사태를 겪을 수 있다는 뜻이다. 지식경제부 관계자는 “14일에도 날씨가 덥긴 했지만 이날까진 추석 연휴 중인 산업체가 많았다”며 “15일 산업계 전력 수요가 한꺼번에 몰리면서 수요가 급증했다”고 말했다.
○ 안일한 전력당국, 일터지자 ‘우왕좌왕’
전력 수급 정책을 총괄하는 지경부와 수급관리를 하는 전력거래소, 전력수송을 맡은 한국전력 가운데 어느 곳도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다. 기상청은 가을 중반까지 늦더위가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전력당국은 예년처럼 무더위가 끝났다고 판단해 10일부터 전체 발전용량의 11%(834만 kW)를 차지하는 23개 발전소의 가동을 중단했다. 지경부 관계자는 “23개 발전소 가동을 중단한 건 1년에 한 번 있는 정기점검을 위한 것이었다”며 “매년 전력수요가 급증하는 여름과 겨울을 피해 9월경 집중 정비를 하는데 올해는 수요 예측이 빗나갔다”고 해명했다.
전력거래소의 대처도 안이했다. 이날 예비전력은 오후 들어 빠른 속도로 낮아졌지만 전력거래소는 ‘매뉴얼대로’ 한전과 자율절전 계약을 맺은 소비자들에게 전력 소비 자제 요청을 하는 등 소극적 대응을 했다. 하지만 예비전력은 계속 뚝뚝 떨어졌다. 뒤늦게 다급해진 전력거래소는 아무런 예고도 없이 전국의 전기를 돌아가며 끊는 ‘순환 정전’을 실시했다.
지경부 관계자는 “미리 공지를 못한 것이 제일 아픈 부분”이라며 “수요 예측을 잘못한 상황에서 전력 수요가 너무 가파르게 올라 정신없이 순환 정전에 들어갔다”고 실토했다. 이날 전력거래소와 한전은 사고 발생 2시간이 넘어서도 “이런 일은 처음”이라며 정확한 피해 현황과 대응법을 파악하지 못해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전력거래소는 이날 5시간 동안 순환 정전을 실시한 끝에 오후 7시 56분에야 전력 공급을 정상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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