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과 여의도 일대를 비롯해 경기, 강원, 충청 등 제주를 제외한 전국 곳곳이 기습적으로 정전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15일 벌어졌다. 정전 규모는 전국적으로 순간 최대 162만 곳(오후 6시 반)에 달했다. 가정과 공장, 병원 등 162만 곳의 전기가 동시에 끊긴 것이다. 오후 3시 10분 시작된 정전사태는 약 5시간 뒤인 오후 7시 56분에야 정상화됐다.
전력을 공급하는 한국전력공사에는 시민들의 문의 전화가 빗발쳤다. 엘리베이터에 시민들이 갇히면서 전국적으로 400여 건의 구조 요청이 쏟아졌다. 신호등이 꺼진 차로에는 경찰들이 나와 수신호로 차량들을 운행시켰다. 놀란 국민은 집과 사무실을 뛰쳐나와 “테러가 발생한 것 아니냐”라며 불안해하기도 했다. 정부의 전력 수요예측 실패가 빚은 어이없는 사태였다. 일부 기업은 정전에 따른 가동 중단과 생산 차질을 겪었으나 비상시에 대비해 자체적인 발전시설을 갖춘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SK에너지, 포스코 등 주요 기업들은 별다른 정전 피해를 보지 않았다.
예고 없이 벌어진 사고의 원인은 정전이 1시간 반 정도 이어진 4시 30분경에야 밝혀졌다. 전력 수급을 관리하는 전력거래소는 “갑작스러운 기온 상승으로 전력 수요가 늘어 정전이 빚어졌다”고 궁색한 해명을 내놓았다.
이날 전력 사용량은 오후 3시에 6700만 kW를 넘어서면서 예비전력이 역대 최저치인 148만9000kW로까지 떨어지는 아찔한 상황도 맞았다. 전력거래소와 한전은 예비전력이 400만 kW 이하로 떨어지면 ‘비상시 수급조절 운영계획 매뉴얼’에 따라 전국적인 정전을 막기 위해 지역별로 순환 단전을 하도록 돼 있다. 상황이 다급해진 전력거래소는 지경부에 보고 없이 순환 단전조치부터 취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날 예비전력이 위험수준까지 떨어진 것은 기온이 오르면서 냉방 수요가 급증한 탓도 있지만 전력관리 당국이 전력 공급을 크게 줄였기 때문이다. 지식경제부와 한전은 10일부터 전국 23개 발전소의 가동을 중단하고 정비를 하고 있다. 이들 발전소의 발전능력은 834만 kW 규모로 원자력발전소 9기의 용량에 해당한다. 지경부는 “냉방 전력수요가 낮아지는 매년 9월에 발전소 정비를 하고 있다”며 “올해는 때늦은 무더위가 찾아와 수요 예측에 실패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시민들은 “정부가 전력수요를 예측하지 못한 데다 예고도 없이 전기를 끊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서울의 한 사립대 교수는 “갑자기 연구실과 강의실의 전력 공급이 한 시간 이상이나 중단돼 수업 진행에 큰 차질을 빚었다”며 “예고도 없이 전력 공급을 중단하다니 지금이 1960, 70년대도 아니고 황당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최중경 지경부 장관은 이날 오후 “오늘 전력수급 상황이 급변할 것을 예측하지 못해 예고 없이 단전을 하면서 국민 여러분께 불편을 끼쳤다”며 “추가 전력설비를 투입하는 등 보완대책을 마련해 유사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대국민 사과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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