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6일째 냉동고에 갇힌 딸… 이젠 하늘로 보내주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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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9월 17일 03시 00분


‘만삭 의사부인 사망’ 친정아버지 박창옥 씨

‘만삭 의사부인 사망사건’의 피해자 아버지 박창옥 씨가 15일 오후 1심 선고 직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KBS TV 화면 촬영
‘만삭 의사부인 사망사건’의 피해자 아버지 박창옥 씨가 15일 오후 1심 선고 직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KBS TV 화면 촬영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가 떨렸다. ‘만삭 의사부인 사망사건’ 피해자의 아버지 박창옥 씨는 15일 1심 선고공판이 끝난 뒤에도 딸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딸이 떠난 지 벌써 8개월이 지났다. 16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그는 긴 한숨부터 내쉬었다.

27년간 애지중지 키운 딸이었다. 사위 백모 씨(31)와 6년간의 연애 끝에 2009년 결혼했을 때만 해도 이런 비극을 보리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더구나 출산 한 달을 앞두고 사위 손에 목이 졸려 숨졌다니…. 사위가 집에 오면 컴퓨터게임만 해 많이 외롭다며 딸이 속상해할 때도 큰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다 딸은 영원히 떠나버렸다. “자식 잃은 부모 마음이 다 똑같겠지만…. 참 이겨내기가 힘드네요.”

박 씨는 7월 21일 법정 피고인석에서 자신을 바라본 사위의 눈빛이 잊혀지지 않는다고 했다. 박 씨가 법정 스크린에 처참한 모습으로 죽어 있는 딸의 사진을 외면하는 사위에게 “너도 이 사진을 봐야 한다”고 고함을 쳤을 때 돌아온 섬뜩한 눈빛이었다. “딸이 저런 사위와 함께 살았으니 마음고생이 얼마나 심했을까.”

박 씨는 1심 공판 내내 스스로 마음을 다잡았다. 때로는 흥분과 절망, 불안이 엄습했지만 자신이 흥분하면 이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데 방해가 될 것 같았다. 남들은 속도 모르고 “딸을 잃은 사람이 너무 담담해 보인다”고 했다.

그는 사위의 유죄를 확신했다. 검찰이 밝힌 증거가 진실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선고를 앞두자 마음이 불안했다. ‘혹시 무죄가 나오면 어쩌나. 불쌍한 우리 딸은….’ 재판장이 징역 20년을 선고하는 순간 박 씨는 눈을 질끈 감았다. 눈가엔 ‘이슬’이 맺혔지만 마음은 눈물로 채워지고 있었다.

박 씨는 “이제야 딸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그는 현재 가족과 장례 일정을 준비하고 있다. 딸은 죽음 이후 246일째 냉동고에 갇혀 있다. 그는 딸의 사망 원인을 놓고 사위 가족과 갈등이 생기면서 장례를 치를 엄두도 못 냈다. 사위 가족은 사과 한마디 없이 “상주(喪主)는 우리”라며 상을 치르겠다고 했다. 진실도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그럴 수는 없었다.

장례일은 일단 24일로 잡았지만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출산을 한 달 앞두고 숨진 딸의 몸에는 아직 태아가 있다. 불교신자인 박 씨는 딸과 외손주를 따로 입관해야 이승의 업보가 내세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병원 측은 시신을 분리 수술할 수 없다고 했다. 박 씨는 경찰에 딸과 외손주를 분리해 달라고 민원을 냈다. 그는 “한 달 뒤면 세상에 나올 녀석이었는데 따로 장례를 치러 엄마랑 나란히 묻어 주고 싶다”고 말했다.

1심 선고까지는 긴 시간이 걸렸다. 경찰과 검찰은 사위를 범인으로 지목했지만 그는 “사고였다”고 주장했다. 재판이 시작되자 공방은 더 치열해졌다. 이 과정에서 양가의 갈등은 걷잡을 수 없이 깊어졌다. 공판 내내 욕설이 오가고 심지어 멱살잡이까지 벌어졌다.

치열한 공방 속에 사위 측이 해외 법의학자 마이클 스벤 폴라넨 캐나다 토론토대 법의학센터장을 증인으로 데려왔을 때 박 씨는 긴장했다. 박 씨는 “1995년 치과의사 모녀 살해사건이 대법원에서 무죄가 된 데는 해외 법의학자가 큰 역할을 했다”며 “어떻게 잘 헤쳐 나갈까 고민하느라 고통스러웠다”고 말했다. 박 씨는 진실을 밝혀준 검찰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말로 표현할 수없는 고마움을 느낀다고 했다.

박 씨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사위 백 씨는 16일 법원에 항소장을 제출했다. 항소심과 이후 계속될지 모르는 상고심에서도 박 씨는 진실을 반드시 지켜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이미 밝혀진 진실은 결코 덮어질 수 없다”고 말했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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