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인민무력부 산하 정찰총국이 지난해 초 고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에 대한 암살조를 남파한 데 이어 황 전 비서의 측근이자 1997년 남한 망명 동지였던 김덕홍 전 북한 여광무역연합총회사 총사장에 대한 독극물 암살 테러까지 계획한 것으로 16일 확인됐다.
국가정보원은 정찰총국의 지령을 받아 ‘3대 세습’을 비판하는 전단(삐라)을 날리는 활동을 주도한 자유북한운동연합 박상학 대표를 상대로 독침테러를 기도한 혐의(국가보안법의 목적수행 및 특수잠입·특수탈출 등)로 6일 구속한 탈북자 출신 간첩 안모 씨에게서 “지난해 초 정찰총국으로부터 암살 지시를 받았다”는 진술을 확보하고 안 씨를 도운 공범이 있는지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국정원은 지난해 황 전 비서의 암살조 사건과 안 씨의 진술 등을 토대로 북한이 ‘배신자’로 낙인찍은 황 전 비서와 김 전 총사장 등 고위 망명객들에 대해 조직적인 암살작전을 세웠던 것으로 보고 있다. 북한이 탈북자 사회의 중심축 역할을 하는 고위급 탈북자들을 암살함으로써 북한 체제의 위협 요소인 2만2000여 명의 한국 정착 탈북자에게 경고를 보내려 한 것으로 풀이된다.
국정원은 구속한 안 씨에게서 “지난해 말 정찰총국으로부터 김 전 총사장의 암살 지령을 받았지만 그에게 접근하기 어려워 계획을 실행하지 못했다”는 진술을 받아낸 것으로 알려졌다. 또 안 씨는 “김 전 총사장에 대한 암살 계획을 접은 이유는 황 전 비서를 암살하라는 지령을 받고 남파된 정찰총국 소속 동명관 김명호 소좌가 지난해 4월 구속된 뒤 김 전 총사장에 대한 남한 당국의 보안·경호가 한층 강화됐기 때문”이라고 진술했다.
이후 안 씨는 제3국으로 나가 정찰총국 공작원들로부터 새로운 암살 지령과 함께 만년필형 독침 1개와 독총 두 자루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안 씨는 새로운 지령에 따라 자유북한운동연합 박 대표의 암살 계획을 세운 뒤 올 2∼8월 옛 친분을 내세워 박 대표의 대북 전단 날리기 활동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안 씨는 3일 박 대표를 만나 그를 암살할 계획이었으나 사전에 계획을 포착한 국정원에 검거됐다. 안 씨는 박 대표 암살 직후 베트남으로 도주하기 위해 항공기 표까지 구매했던 것으로 수사 결과 확인됐다.
박 대표는 16일 동아일보 기자와의 통화에서 “안 씨가 만나자는 전화를 하기 열흘 전쯤인 지난달 22일경 국정원 관계자의 경고 전화를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곧 안 씨가 만나자고 연락할 텐데 독극물 암살을 계획한 간첩이니 절대 만나러 나가지 말라는 경고를 받아 약속 장소에 나가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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