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상품권에 재래시장 살아났다… 추석 지나니 싹 사라졌다

  • Array
  • 입력 2011년 9월 17일 03시 00분


코멘트

■ 상품권 도입 2년, 재래시장에선 지금…

《 추석 연휴 기간인 11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인왕시장. 주부 변광숙 씨(57)가 제수용 고사리를 산 뒤 5000원권 온누리상품권을 내밀었다. 변 씨는 “이곳에서는 상품권을 받는지 물어볼 필요도 없다”고 했다. 가게 주인 한성식 씨(47)도 “오전까지만 상품권을 30장 넘게 받았다”고 했다. 그의 주머니에는 지폐와 상품권이 뒤섞여 있었다. 인근 떡집에서도 송편을 사려는 손님들이 현금 대신 온누리상품권을 쥐고 있었다. 떡집 주인 이병국 씨(61)는 “올해는 매출의 5분의 1이 상품권으로 결제한 것”이라고 말했다. 》
○ 현대차 울산공장 28억 원어치 구입

정부가 2009년 재래시장 활성화를 위해 도입한 온누리상품권이 활발하게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추석을 맞아 대기업과 공공기관에서 온누리상품권을 대량 구입해 직원들에게 나눠주면서 재래시장 활성화에 힘을 불어넣었다.

상품권을 발행하고 있는 중소기업청과 시장경영진흥원에 따르면 추석 대목이었던 지난달 15일부터 이달 13일까지 판매된 온누리상품권은 약 1000억 원어치로 지난해 추석 판매액(250억 원)과 지난해 전체 판매액(858억 원)을 훨씬 넘었다. 재래시장 상인들은 “상품권 덕에 추석 대목 특수를 누렸다”고 입을 모았다. 인왕시장에서 식료품 가게를 운영하는 송창옥 씨(63)는 “9∼11일 상품권만 100만 원어치를 받아 매출에 큰 도움이 됐다”며 “상품권을 이용하는 젊은 손님들이 늘고 있는데 재래시장이 되살아나는 것 같아 기쁘다”고 말했다.

경기 성남시 중원구 성남동 모란시장에서는 이번 추석 대목 하루 평균 3000만 원이 넘는 상품권이 유통된 것으로 추산됐다. 유점수 상인회장(57)은 “이번 추석에는 상인들이 가져온 상품권을 환전해 주느라 정신이 없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대기업들이 직원에게 나눠준 상품권도 한몫했다. 울산 북구 호계재래시장에서 생선을 파는 김모 씨(56)는 “현대자동차 직원들이 추석을 앞두고 상품권으로 제수용품을 많이 구입했다”고 말했다. 현대차는 추석을 맞아 울산공장 직원 2만8000여 명에게 1인당 10만 원씩 총 28억 원어치 상품권을 지급했다.

○ ‘반짝 특수’ 우려도


추석을 하루 앞둔 11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인왕시장에 제수용품을 사려는 사람
들이 북적이는 가운데 온누리상품권 등 전통시장상품권을 홍보하는 대형 플래카드가 걸
려 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추석을 하루 앞둔 11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인왕시장에 제수용품을 사려는 사람 들이 북적이는 가운데 온누리상품권 등 전통시장상품권을 홍보하는 대형 플래카드가 걸 려 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일각에서는 온누리상품권 특수가 일회성으로 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올해 추석 물량은 대부분 대기업과 정부가 대량 매입한 것으로 개인이 자발적으로 구매한 양은 많지 않았다는 점 때문이다.

올 추석에 판매된 1000억 원어치 가운데 70%가 넘는 700여억 원어치는 동반성장과 내수 진작 정책에 참여하라는 정부 요청에 따라 대기업과 금융기관에서 사들였다. 나머지 200억 원도 공기업이나 지방자치단체가 사들인 것으로 개인 매수량은 10%에 그쳤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추석 연휴였던 10, 11일 이틀간 재래시장을 취재한 결과 상인들은 “개인적으로 상품권을 사서 온 고객은 보지 못했다”고 입을 모았다. 서울 성북구 정릉동 정릉시장에서 건어물 가게를 하는 정종윤 씨(44)는 “상품권을 들고 오는 손님들은 ‘삼성이나 현대자동차 다니는 자녀가 추석 선물로 받아와서 줬다’고 말하는 50∼70대가 대부분이었다”고 했다.

결국 대량으로 매입한 상품권이 소진되면 재래시장은 다시 썰렁해질 우려가 높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대규모 상품권 매입이 있었던 8월과 설 명절 기간을 제외한 4∼7월 월평균 판매량은 80억 원 수준에 그쳤다. 인왕시장 이재석 상인회 회장(56)은 16일 “추석이 지나자마자 상품권 사용량이 10분의 1 이하로 줄었다”며 “명절 이후 상품권을 한 장도 받지 못했다는 상인도 많았다”고 말했다.

실제 수요와 무관하게 대기업이 대량으로 나눠주면서 상품권이 유통되지 않는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이번 추석에 팔린 1000억 원어치의 상품권 중 회수된 상품권은 14일까지 182억 원에 불과했다. 이 때문에 제도 정착을 위해서는 대기업에 의존하기보다 상품권 사용에 따른 혜택을 늘려 개인 고객을 확보해 나가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현금으로 바꾸기 어렵다”

지방의 일부 시장이나 소규모 재래시장에서는 여전히 상품권을 꺼리는 상점이 많다는 것도 걸림돌이다. 전국 900여 개 가맹 재래시장 중 120여 곳은 상품권 가맹 상점이 절반도 안 된다. 경기 수원에 사는 주부 양모 씨(32)는 “시장 입구에는 ‘상품권 대환영’이라고 적힌 현수막이 있었는데 정작 한 과일 가게 주인은 ‘현금으로 바꾸기 어렵다’며 상품권을 받지 않아 기분이 상했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청 관계자는 “재래시장 상인들이 상품권을 취급해야 손님을 끌어들일 수 있다는 인식을 갖도록 매년 4만5000명의 상인을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할 예정”이라며 “주차공간과 편의시설 확대 등 재래시장 쇼핑 환경도 함께 개선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수원=이성호 기자 starsk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