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샤워하는 내 모습 찍혀 인터넷에… 그것도 생중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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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9월 19일 03시 00분


여성들 ‘도촬’ 공포… 경찰 음란사이트 ‘소라넷’ 수사

도촬 장비가 초소형화되고 있다. 위부터 초소형 캠코더가 달린 안경, 볼펜, 라이터.
도촬 장비가 초소형화되고 있다. 위부터 초소형 캠코더가 달린 안경, 볼펜, 라이터.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이가 갈립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저를 보고 수군거리는 것 같아 이제 교복을 입고 밖을 나갈 자신이 없어요.”

경기지역의 평범한 여고생인 A 양은 지난 추석 연휴 기간 인터넷 게시글 하나를 클릭했다가 큰 충격에 빠졌다. 국내 음란사이트 ‘소라넷’에 여성들을 불법 ‘도촬’(도둑촬영)한 노출 사진 및 동영상이 공유되고 있다는 고발성 글이었다. 혀를 차며 화면을 내리던 그의 눈에 낯익은 교복과 가방, 머리 스타일이 눈에 들어왔다. A 양 자신이었다. 얼굴은 물론이고 교복에 달린 명찰 이름까지도 알아볼 수 있는 사진과 함께 치마 속 사진이 노골적으로 찍혀 있었다.

순간 손이 떨리고 겁이 나기 시작한 A 양은 사태 파악을 위해 소라넷 사이트를 방문했다. 사진은 이미 1만4000명이 본 뒤였다. ‘어느 학교 교복이냐’ ‘참하게 생겼다’는 댓글도 여러 개 달려 있었다. A 양은 게시자에게 삭제를 요구하는 쪽지를 보냈지만 ‘사진 속 인물이 어떻게 본인이라고 확신하느냐’는 적반하장식 답만 돌아왔다. A 양은 “주변 사람들도 알아보고 연락을 해와 결국 휴대전화를 꺼놓아야 했다”며 “내 교복 치마가 너무 짧았던 건 아닌지, 내 모습에 문제가 있는 건지 스스로를 원망하게 됐다”고 한 온라인 게시판에 도움을 요청하는 글을 올렸다.

불법 도촬이 도를 넘어 성행하고 있다. 지하철에서 깜빡 조는 동안, 계단을 오르는 도중 심지어 자신의 집 욕실에서 씻는 사이 자신도 모르게 사진이 찍혀 음란사이트에 올라갈 수 있다. 대표적인 사이트가 이 같은 사진 및 영상 수만 건을 공유하는 소라넷. 경찰청은 최근 소라넷 운영자 및 게시글 작성자들을 처벌해 달라는 누리꾼의 집단 민원을 접수하고 수사에 착수했다고 18일 밝혔다.

소라넷은 1999년 개설돼 음란물 유포 및 중개로 이름을 알린 사이트로 경찰 수사와 정부의 차단 조치를 피해 해외 서버를 기반으로 운영된다. 최근 이 사이트 회원들이 올리는 음란물은 단순 ‘야동’(야한 동영상) 수준을 넘어 심각한 사생활 침해 및 명예훼손이 우려되는 내용이다. 해당 홈페이지 ‘훔쳐보기’ 게시판에는 지하철이나 버스, 직장, 학교 등에서 몰래 찍은 여성들의 노출 사진이 하루에도 수십 건씩 올라온다. 주로 여성들이 한눈을 파는 사이 휴대전화로 몰래 찍은 것들이다. 최근에는 ‘찰칵’ 소리가 나지 않는 ‘도촬 전용 애플리케이션’까지 나와 여성들은 자신이 찍힌다는 사실도 알기 어렵다.

일부는 아예 볼펜이나 안경, 시계 모양으로 제작된 초소형 카메라를 스토킹하는 여성의 집 창틀에 설치해두고 사진을 찍기도 한다. 실제 이달 14일 올라온 사진 중에는 집에서 샤워하는 여성의 알몸과 얼굴까지 그대로 드러난 것도 있다. 해당 글 작성자는 ‘샤워하는 소리가 나 찍었다. 창문 먼지 때문에 화질이 별로 좋지는 않다’는 설명글도 함께 올렸다. 이 밖에도 호프집이나 커피숍 여자 화장실에 몰래 웹캠을 달아두고 동영상으로 녹화하거나 망원 렌즈를 이용해 남의 집 안방이나 거실을 찍어 올리는 경우도 많다. 여성들은 “밖에선 화장실 가기도 겁난다”고 호소할 정도다.

경찰은 2000년대 초반부터 소라넷을 꾸준히 추적해 왔지만 근절되지 않고 있다. 2004년 사이트 운영자 등을 무더기로 검거한 후 사라진 듯했지만 2009년 6월 트위터 계정과 함께 부활했다. 소라넷 운영진은 사이트 차단에 대비해 일주일마다 바뀌는 사이트 주소를 트위터로 공지한다. 팔로어만 18일 기준 23만6765명.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해 4월 국내 PC로는 소라넷 트위터 계정에 접속할 수 없도록 차단 조치했지만 소라넷이 트위터 계정을 교묘하게 바꿔 헛수고가 됐다. 방송통신위원회 관계자는 “새로 바꾼 트위터 계정도 바로 차단하겠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운영자가 호주 영주권을 가진 한국계 장애인이고, 서버 역시 호주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본다. 경찰 관계자는 “호주에선 음란물 제공이 불법이 아니다 보니 인터폴의 공조를 받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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