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박문여고 손서영 양(사진 왼쪽)과 서울 인창고 김남윤 군은 진로에 맞는 일관성 있는 비교과 활동경력과 폭넓은 독서를 통해 얻은 사고력을 바탕으로 6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올해 연세대 창의인재전형에 합격했다.
《60.6 대 1. 올해 신설된 연세대 입학사정관전형인 창의인재전형에는 30명 모집에 1800여 명이 몰렸다. 한 달여간의 평가기간을 거쳐 7일 합격자를 발표했고 12월 최종합격자 등록만 남겨두고 있다. 이 전형이 주목받은 이유는 고교 내신과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을 반영하지 않고 △추천서 △우수성 입증자료 △창의에세이 △학교생활기록부 △자기소개서 △면접 점수를 종합평가해 합격자를 결정했기 때문. 정량화된 수치가 아닌 학생의 잠재력을 보고 창의적 인재를 선발하겠다는 목표에 맞춰 이 전형은 어떤 방법으로 학생을 평가했을까? 최종 합격한 인천박문여고 3학년 손서영 양(19)과 서울 인창고 3학년 김남윤 군(18)을 통해 창의인재전형을 살펴보자.》 ○에세이 주제…세종대왕이 외계인을 만났다면?
창의인재전형은 1단계 서류평가에서 내신 성적을 보지 않고 추천서와 고교시절 활동 포트폴리오인 우수성 입증자료만을 받았다. 사설기관과 연계된 해외봉사활동과 리더십 프로그램 등은 평가에 반영하지 않았다. 그 대신 창의에세이 시험을 치러 세 가지 항목의 점수를 합산해 약 3배수의 1단계 합격자를 선정했다. 창의에세이 시험은 인문·자연계열 공통주제로 치렀다. 시험문제로는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라는 말과 연관될 수 있는 단어를 5개 이상 나열하고 왜 이 단어들이 연상되었는지 각각 설명하시오. △2040년도에 세종대왕과 외계인이 만나는 상황을 가정하고 이 상황에서 둘 사이에 어떤 대화가 이루어질지 서술하시오가 출제됐다. 지원자는 줄이 없는 A3 용지에 분량제한 없이 120분간 두 가지 주제의 답안을 작성했다.
2단계 면접은 우선선발 대상과 일반선발 대상으로 나눠 진행됐다. 1단계 성적이 우수한 학생은 우선선발 대상으로 선정됐다. 교수면접관 2인과 입학사정관 1인은 지원자가 제출한 서류에 대한 확인 질문을 중심으로 약 30분간 면접을 치렀다. 일반선발 대상자는 2인의 교수 면접관이 약 60분간 실시하는 심층구술면접을 봤다. 면접장에 들어가기 10 분전 안내를 받고 본인이 1단계에서 제출한 우수성 입증자료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 내용에 대해 5분간 발표했다. ○허를 찌르는 질문…독서를 통한 배경지식으로 극복!
손서영 양은 일반선발 대상으로 심층면접을 치르고 정치외교학과에 합격했다. 손 양은 일찌감치 정치외교학과로 진학목표를 세우고 1학년 때부터 꾸준히 관련 비교과활동을 했다. 우수성 입증자료에는 △전교학생회장 △외교·정치·경제 포럼 참가 △청소년 정책을 제안하는 참여위원회 활동 △다문화가정 초등생 대상 멘토링 봉사 등을 담았다.
창의에세이는 평소 학교논술수업과 독서를 통해 쌓은 배경지식을 바탕으로 사회이슈와 연결해 논술형식으로 풀어냈다. 첫 번째 문제는 ‘도요타 리콜사태’ ‘색안경’ ‘찰리 채플린’ 등을 썼다. 도요타 리콜사태는 ‘차량 제작단계의 결함에 빨리 대응하지 못하고 작은 비용을 아끼려 계속 끌고 가다 더 큰 문제를 일으켜 매몰비용이 발생했다’는 이야기를 썼다. 색안경은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인종적 특성을 첫 단추에 비유하며 인종적 편견이 만들어 내는 사회적 비용의 문제로 풀어냈다. 두 번째 주제는 한글이 다른 문자보다 스마트폰 등 미래사회 기기에 빠르게 입력할 수 있다는 점을 예로 들었다. 언어의 우수성으로 한국이 강대국이 될 가능성을 과거 서구사회의 역사를 근거로 들며 썼다.
면접장에서는 창의성을 요구하는 질문이 이어졌다. △한 마을에서 자연재해가 발생했는데 오직 한 집만 무사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정외과를 졸업해서 28세에 여성 국회의원이 됐는데 다선의 50대 남성 국회의원이 ‘경험 없는 젊은 의원이 정치를 아느냐’며 모욕적인 발언을 했을 때 10초 안으로 대응을 해야 한다면? 등의 질문을 받았다.
손 양은 “독창적인 답을 하려고 고집하기보다는 문제와 질문의 요지를 파악하는 데 중점을 뒀다. ‘정치 경험보다는 인물의 자질과 신념이 중요하다’는 다소 원론적일 수 있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지만 그에 맞는 근거를 사회적 맥락 속에서 이야기했다”면서 “학창시절 사마천의 ‘사기’부터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까지 폭넓은 독서를 하며 쌓은 배경지식이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영화감독 꿈꾸는 철학도… 우선선발 최종합격!
김남윤 군은 철학을 바탕으로 한 영화감독의 꿈과 학업계획을 적극 어필해 우선선발 대상으로 철학과에 합격했다. 우수성 입증자료에는 영화와 철학분야 활동경험을 균형 있게 담았다. △자신의 영화작품과 시나리오 △방과후학교 고전강독 프로그램 참여 △학교 홍보동영상 촬영 △인터넷 문학카페 및 영화작품 유튜브 채널 운영 △철학적 영화비평 쓰기 활동 등을 썼다.
창의에세이에도 영화적 구성에 철학적 사고를 녹여냈다. 영화시나리오를 쓴 경험을 살려 글을 전체적으로 구성했고, 각 키워드를 하나의 주제로 통일되게 쓰려고 노력했다. 첫 번째 에세이 주제에는 ‘실패’ ‘마음’ ‘운명’ ‘반전’ ‘성공’이라는 키워드를 유기적으로 연결해 하나의 스토리로 만들어 냈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그 이후의 과정은 모두 실패인데, 이때의 마음가짐이 매우 중요하다. 때론 노력 여부와 관계없이 실패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런 시행착오로 ‘오버랩’ 같은 영화기술을 발견한 것처럼 반전적인 성공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맥락으로 글을 풀었다.
두 번째 에세이는 공상 과학적 내용의 영화시나리오 형식으로 구성했다. 전 세계에 세종대왕과 외계인의 대담이 중계되는 상황을 가정하고 두 사람의 대화 속에 미래에 심화된 개인주의와 다문화사회의 문제와 해결방안을 녹여냈다.
면접에서는 제출한 서류와 포트폴리오 중심의 질문이 이어졌다. △좋아하는 영화감독은 누구인가 △앞으로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나 △좋아하는 철학자는 누구인가 △포스트모더니즘이 무엇이고 어떻게 생각하는가 △영화공부는 어떻게 했나 △영화를 제작하면서 어려움이 있었다고 썼는데 어떤 일이 있었는가 같은 내용이 주를 이뤘다.
김 군은 “고교시절 영화 관련 활동을 하면서 훌륭한 영화감독이 되려면 기술적인 부분 외에도 사람과 사회를 이해하는 깊은 통찰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철학 전공을 결심하게 된 계기를 설명하고 그에 맞는 활동을 지속적으로 해온 부분을 어필한 게 좋은 평가를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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