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이처럼 막대한 재산을 가진 노숙인이 있을까. 상상하기도 쉽지 않지만 정답은 ‘있다’다.
지난달 31일 인천 중부경찰서 강력팀에 근무하는 한 경찰관은 50대 남자에게서 ‘500만 원이 넘는 고급 금장 손목시계와 현금 500만 원이 든 검은색 가방을 도둑맞았다’는 신고를 받았다. 피해자인 A 씨(51)는 이날 오전 5시 반 인천 중구 인현동의 한 건물 야외공간에서 술에 취해 계단에 앉아 휴식을 취했는데 가방을 옆에 두고 깜빡 잠이 들었다는 것이다. 10여 분 뒤 잠에서 깬 A 씨는 가방이 없어진 사실을 알고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관이 거주지를 묻자 A 씨는 “집은 없고 1년 전부터 인천시내 공원, 빌딩 등을 돌아다니며 노숙하고 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노숙인인 A 씨가 잃어버린 현금의 출처에 대한 설명을 듣고 깜짝 놀랐다. 수년 전 부모에게 상속받은 부동산을 보상받아 50억 원대의 재산을 갖고 있다는 것.
A 씨는 “사업을 하다 손해도 봤지만 남은 보상금을 은행에 예치해 한 달에 이자로만 1000만 원 이상을 받아 넉넉하게 생활해 왔다”고 진술했다. 결혼을 하지 않아 부양가족이 없는 A 씨는 늘 검은색 가방에 손목시계와 현금 500만 원 이상을 넣고 다니며 노숙한 것으로 조사됐다. 식사는 식당에서 해결했다. 경찰관이 “많은 돈이 있는데 왜 노숙을 하느냐”고 묻자 A 씨는 “집이나 여관, 호텔 등은 답답해서 도무지 잠을 잘 수 없어서 노숙을 시작했다”고 했다.
A 씨에게 피해자 진술을 받은 경찰은 곧바로 수사에 착수했다. 건물 주변 폐쇄회로(CC)TV를 분석한 결과 새벽 운동을 나온 이 동네 주민 B 씨(51)가 A 씨가 잠든 사이 돈 가방을 들고 간 사실을 확인하고 붙잡아 절도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은 B 씨가 이미 써버린 100만 원을 뺀 나머지 400만 원과 시계를 회수해 A 씨에게 돌려줬다. B 씨는 경찰에서 “가방이 A 씨로부터 2m 정도 떨어져 있어 주인이 없다고 생각하고 가져갔다”며 “고급시계와 현금 다발이 들어 있어 오히려 당황했다”고 진술했다. 경찰 관계자는 “A 씨는 돈을 돌려주자 연방 고개를 숙이며 ‘고맙다’고 했는데 그의 기행이 인터넷 등을 통해 알려지자 ‘명예훼손 혐의로 경찰을 고소하겠다’고 했다”며 “이런 알부자가 노숙하며 사는 것은 처음 봤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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