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동 송파어린이도서관 강당에서 폴란드 그림책 작가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씨(오른쪽)가 어린이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송파구 제공
“왜 하고많은 일 중에 작가를 했어요?”
23일 오후 4시 서울 송파구 잠실동 송파어린이도서관 강당. 한 초등학생이 당돌하게 질문을 던지자 현장은 웃음바다가 됐다. 폴란드 출신 그림책 작가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씨(51)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한국 작가 김희경 씨와 함께 만든 그림책 ‘마음의 집’으로 올해 2월 이탈리아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에서 ‘라가치상’ 논픽션 부문에서 대상을 탔다. 이 상은 어린이 문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린다. 그는 초등학생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내가 제일 잘하는 건 그림 그리고 글 쓰는 거예요. 난 그때가 가장 행복합니다. 누구나 남들보다 잘하는 게 있을 겁니다. 그걸 하면 삶이 행복할 겁니다.”
질문한 초등학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환하게 웃던 부모들은 다시 진지한 표정으로 그의 말을 듣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아이들이 손을 들었다. 한 여자아이는 이가 빠져 새는 발음으로 “어릴 적 가장 무서웠던 게 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11세 때 처음 월경을 경험했는데 너무 아파서 담요를 뒤집어쓰고 끙끙 앓았죠. 난 아직도 아이인데 어른 옷을 입은 것 같은 느낌이었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고통은 자연스레 사라졌어요. 지금 당장 힘든 일이 있어도 용기를 잃지 않고 잘 버텨 보세요”라고 했다.
최근 ‘초경’을 주제로 한 새로운 그림책 ‘여자아이의 왕국’을 낸 그림책 작가 흐미엘레프스카 씨가 송파어린이도서관을 찾아 어린이 독자 및 학부모 100명과 팬미팅을 했다. 그는 “어린이 독자와의 팬미팅은 생애 처음”이라며 “내가 만든 그림책을 읽는 한국 아이들이 어떤 생각과 고민을 갖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일부러 시간을 내 왔다”고 말했다. 세계적인 작가의 도서관 방문에 아이들도 신기한 듯 질문을 쏟아냈다.
그가 만든 그림책 36권 중 15권은 한국에서 출간됐다. 그의 작품은 어른들이 봐도 선뜻 이해가 가지 않을 만큼 철학적이고 추상적이다. 그림도 몽환적이다. 그는 “그림책은 명확한 답을 주지 않고 오히려 질문을 던지는 매체”라며 “아이가 스스로 답을 찾도록 하는 것이 그림책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나도 작가가 되고 싶다”는 아이들에게 그는 “살면서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2009년 개관한 송파어린이도서관에는 체코 출신의 그림책 작가 크베타 파초프스카 씨부터 영국 출신 그림책 작가 에밀리 그래빗 씨, 일본 만화가 이와미 세이지 씨 등 유명 작가들이 방문해 아이들과 팬미팅을 했다. 팬미팅 대상은 아이지만 어른도 흥미를 가지기는 마찬가지다. 이날도 학부모들은 흐미엘레프스카 씨의 교육법에 관심을 보였다. 그래픽 일러스트레이터인 큰딸(28)부터 아트세러피 전문가인 작은딸(24) 등 2남 2녀인 자녀들은 모두 다른 일을 하며 제 방식대로 살아가고 있다. 그는 “부자가 있다면 가난한 사람이 있듯이 세상의 어두운 부분도 아이들에게 알려줘 스스로 세상을 헤쳐 나갈 수 있는 힘을 기르게 했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직설적이고 솔직한 질문으로 팬미팅 끝까지 작가를 긴장시켰다. 마지막 질문은 “책 만드는 거 힘든데 왜 만드느냐”라는 것이었다.
“맞아요. 책 만드는 거 진짜 힘들어요. 그래도 힘든 일 하는 걸 좋아해요. 쉬운 일만 하면 마음에 남는 게 없거든요. 과정은 힘들어도 마지막까지 기다려 보면 ‘만족감’이라는 큰 선물을 받아요. 전 그때가 기분이 정말 좋아요. 팬미팅 하기 전 긴장했는데 끝나는 지금 이렇게 재미있고 후련한 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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