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자고속도로 ‘혈세 먹은 하마’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9월 28일 03시 00분


9곳 실교통량 잘못 예측
10년간 1조5251억 정부보전

“국정감사만 넘기면 끝입니까. 어떻게 매년 지적해도 나아지는 게 하나도 없어요.”

27일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국토해양부 국정감사에서는 민자(民資)고속도로와 관련된 의원들의 질책성 질의가 이어졌다. 민자고속도로의 적자를 메워주기 위해 정부가 사업자에게 지급하는 ‘정부보전지급액’이 논란의 대상이었다.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은 권도엽 국토해양부 장관을 향해 “이건 직무유기”라고 목청을 높였다. 민자고속도로에 정부가 매년 예산을 투입하는 ‘비효율’이 발생하는 이유가 뭘까.

국토부가 이날 한나라당 장제원 의원에게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정부는 2002년부터 2010년 적자를 물어준 올해까지 ‘최소운영수익보장(MRG)’ 방식으로 건설한 9개 민자고속도로에 총 1조5251억 원을 보전했다. MRG란 고속도로나 항만 등 공공시설을 민간에서 건설한 후 수입이 예상보다 적으면 정부가 보상해주는 방식이다. 예산낭비 논란이 커 2006년 폐지됐지만 그전에 계약한 9개 고속도로가 문제다. 짧게는 10년, 길게는 20년간 MRG에 묶여 있다. 보전금액이 가장 큰 고속도로는 인천공항고속도로로 2002년 이후 7909억 원을 투입했다. 천안논산고속도로와 대구부산고속도로에도 각각 3432억 원과 2289억 원이 들어갔다.

9개 고속도로 중 실제 교통량이 개통 이전 예측치보다 높은 곳은 없다. 정부보전금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의미다. 예측과 가장 어긋난 곳은 부산울산고속도로로 하루 4만1764대가 통행할 것으로 봤지만 실제는 2만1683대(51.9%)에 그쳤다. 대구부산고속도로(55.8%) 인천공항고속도로(57.5%)도 예측치를 크게 밑돌았다.

투입되는 예산도 줄지 않고 있다. 2008년 이 고속도로들에 지급되는 보전액은 1821억 원이었지만 올해 2766억 원까지 늘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교통량 예측에 실패한 예측 기관에 대한 징계와 처벌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한나라당 정희수 의원은 “잘못된 수요 예측으로 1조5000억 원을 낭비한 통행량 예측 회사 유신코퍼레이션과 ADL ENC 등을 형사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국토부 측은 “관련법에 수요 예측 기관에 대한 처벌조항을 넣은 것이 2007년”이라며 “소급 대상이 되지 않을뿐더러 고의로 수요 예측을 부실하게 실시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수년째 예산낭비 논란이 거듭되면서 재협상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지만 여의치 않다. 한나라당 홍일표 의원은 이날 국감장에서 “계약한 민간기관과 손해보전 비율을 낮추도록 정부가 좀 더 적극적으로 재협상에 나서라”고 주문했다. 그러나 국토부는 “계약에 따른 것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재협상이 어렵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도로 관리에 문제를 일으키는 등 귀책사유가 발생하지 않는 한 재협상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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