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소후 보석’ 전제로 한 영장발부 늘듯… 법원-검찰 해묵은 갈등 해소될지 주목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9월 28일 03시 00분


■ 보석 조건부 구속영장 도입땐

양승태 신임 대법원장이 27일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보석 조건부 영장제도는 검찰의 수사 효율성과 재판 과정에서 피의자의 방어권 보장을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 ‘제3의 대안’이라는 분석이 많다.

양 대법원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현실적으로 구속영장이 기각되면 검찰이 수사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는데 영미권에선 보석 기준을 미리 정해 구속영장을 발부하고 있다”며 “구속 효과를 얻으면서 피의자의 실질적인 자유권은 제약하지 않아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법원은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에 대해 ‘기각’ 또는 ‘발부’의 이분법적 판단을 해왔다. 특히 이용훈 전 대법원장이 영장실질심사를 강화하고 불구속 재판 원칙을 강조하면서 구속영장 발부율은 70%대까지 낮아졌다. 지난해 각 지방법원의 형사사건 피고인 26만3425명 가운데 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은 사람은 3만1015명(11.8%)으로 역대 최저치였다. 이에 따라 구속영장의 발부 여부를 놓고 검찰과 법원이 번번이 반목하고 심지어 서로 비난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보석 조건부 영장제도가 도입되면 ‘기소 후 보석’을 전제로 구속영장을 발부하는 사례가 늘어나 검찰의 수사 효율성이 크게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또 ‘이용훈 사법부’가 견지해온 ‘불구속 수사-불구속 재판’ 원칙이 ‘구속 수사-불구속 재판’으로 변화하면서 영장 발부를 둘러싼 법원과 검찰의 해묵은 갈등도 크게 완화될 것으로 보인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구속영장이 기각되면 피의자는 무죄 판결을 받은 것처럼 생각해 수사에 협조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수사 기간만이라도 신병을 확보할 수 있으면 실체적 진실을 파헤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법원 관계자도 “거주지 제한이나 피해자 접견금지 등으로 보석 기준을 다양화하면 ‘유전무죄’ 논란도 사라질 것”이라고 밝혔다.

양 대법원장은 2008년 도입된 국민참여재판에 대해서는 “영미권에서 사법부가 국민의 존경을 받는 이유는 배심제를 통해 국민이 사법절차 자체를 이해할 기회가 있기 때문”이라며 “형사공판에서는 국민참여재판을 적극적으로 더 늘리겠지만 민사재판으로까지 확대하는 것은 비용과 처리기간 문제로 무리가 있다”고 밝혔다. 또 현재 14명인 대법관(대법원장, 법원행정처장 포함) 수에 대해서는 “전원합의 등 대법원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려면 더 늘려선 안 된다”고 못 박았다.

양 대법원장은 자신의 이념 정체성과 관련한 논란에 대해 “이쪽저쪽으로 줄을 세우지 말아 달라”며 “사회적으로 보수, 진보를 나누는 기준은 여성 호주제나 여성 종중(宗中) 자격 인정 같은 것을 들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학 시절 틀에 얽매이기 싫어하고 불합리하면 따르지 않아 ‘반골(反骨)’이라는 얘기를 들었지만 법은 철저히 지키고 수호해왔으며 재판도 이런 기조로 해왔다”고 강조했다.

양 대법원장은 2005년 7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남성만 종중 회원이 될 수 있다는 기존 판례를 바꿀 당시 김영란 전 대법관 등과 함께 “여성도 종중 회원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서울지법 북부지원장으로 일하던 2001년에는 남성 우위의 호주제에 대해 최초로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했다.

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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