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나도 패션스타”… 런웨이 수놓은 시민들의 ‘끼’

■ 초등생서 60대까지 참가 ‘청계천 패션쇼 오디션’ 현장

24일 서울 동대문 패션타운 앞 청계천 오간수교 아래에 마련된 특설무대에서 수상패션쇼 ‘나도 패션스타’ 오디션이 열렸다. 이날 오디션에 참가한 이들이 시민 200여 명과 심사위원이 지켜보는 가운데 무대 위에서 워킹을 선보이고 있다. 60대 주부 배순자 씨(앞)도 무대 위에서 시민들을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서울시설공단 제공

관객 200여 명의 눈이 청계천 위에 설치된 런웨이로 쏠렸다. 빠른 비트의 일렉트로닉 음악이 울려 퍼지면서 모델의 워킹이 시작됐다. 보라색 드레스와 빨간 스카프, 금색 허리띠에 알이 큰 선글라스. 한껏 멋을 낸 모델은 워킹 도중 잠시 멈춰서 포즈를 취하며 자신을 바라보는 관객들에게 손을 흔드는 여유도 보였다. 심사위원들의 손도 바빠졌다.

이날 화려한 워킹을 선보인 주인공은 배순자 씨(64·여). 배 씨는 24일 서울시설공단이 개최한 청계천 수상패션쇼 ‘나도 패션스타’ 오디션에 참가해 10, 20대의 젊은 전문 모델 뺨치는 실력을 선보였다. 배 씨는 “오늘 오디션에 입을 의상을 고르려고 어제 밤늦게까지 잠을 자지 못했다”며 “젊었을 때 부모님의 반대로 이루지 못했던 모델의 꿈을 이제야 이룬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서울 동대문구 동대문 패션타운 앞 청계천 오간수교 아래에 마련된 특설무대에서 열린 오디션에는 배 씨처럼 늦깎이 모델을 꿈꾸는 60대 주부부터 9세 초등학생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지원자 50여 명이 참가했다. 이날 이 근처를 지나다 발걸음을 멈추고 시민모델의 워킹을 지켜보던 시민들은 오디션이 끝날 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고 열띤 응원을 보냈다.

이날 오디션에서는 고령 참가자들의 활약이 두드려졌다. 최고령 참가자 유민자 씨(67·여)는 이날 검은색 가죽 재킷과 청바지, 가시 면류관을 연상시키는 독특한 모양의 목걸이로 멋을 내고 워킹을 선보였다. 유 씨는 “평범한 주부로 남편과 자녀 뒷바라지를 해오다 이제야 내 끼를 맘껏 펼쳐 보이게 됐다”며 “무대 위에서 관객을 향해 당당히 걸어가는 순간 짜릿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여성 참가자들의 활약 속에서 빛을 발한 남성 참가자도 있었다. 동작구에서 서점을 운영하는 양성훈 씨(67)는 검은색 정장을 입고 까만 선글라스를 낀 채 무대에 올랐다. 무대 중간에 서서 허리춤에 손을 올리는 ‘장군님 포즈’까지 취한 양 씨는 “청춘은 60세부터 시작이라는 말을 가슴속에 담고 살아왔다”며 “나이가 들었다고 자신감을 잃을 게 아니라 당당하고 멋있게 살아야 한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나왔다”고 말했다.

갱년기에 찾아온 우울증을 이겨내고 새로운 출발을 하기 위해 참가한 50대 주부도 있었다. 김정희 씨(53·여)는 “나이가 들면 여자로서의 삶이 끝나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도 들었지만 오늘은 50대의 아름다움을 보여줄 수 있어 흐뭇했다”며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멋지게 장식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 오디션에 참가한 시민모델 후보 가운데 최종 선발된 30여 명은 다음 달 1일 같은 장소에서 열리는 청계천 수상패션쇼에 객원 모델로 참가하게 된다. 박승오 서울시설공단 청계천관리처장은 “2008년부터 매달 첫 째 토요일마다 연 수상패션쇼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뜨거워 일반 시민들이 참가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며 “패션쇼 당일에는 댄스 퍼포먼스와 같은 문화공연도 함께 열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날 오디션 심사를 맡은 김두천 한국모델협회 이사는 “노년층 참가자들의 실력이 젊은층을 압도해 깜짝 놀랐다”며 “무대 위에서의 표현력, 관객들과 함께 호흡하는 자세는 지금 당장 무대에 올라도 될 정도로 훌륭했다”고 평가했다.

강경석 기자 coolu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