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길남 박사(69)가 북한의 지시에 따라 독일에서 입북시키려던 유학생은 지방 사립대의 A 교수로 확인됐다.
오 박사가 공작 활동을 하지 않고 한국에 돌아오면서 경남 통영 출신인 부인 신숙자 씨(69)와 두 딸이 요덕수용소에 갇히게 됐다. 세 모녀의 사연이 동아일보에 보도되면서(8월 3일자 2면) 구명운동이 활발해지고 생존 사실까지 최근 알려졌다.
오 박사는 29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1986년 독일에 가서 남한 유학생을 포섭해 오라는 지령을 받았다. 하지만 아내는 딸들을 가증스러운 범죄 공모자의 딸로 만들지 말라고 했다. 입북시키기를 포기했던 유학생은 A 교수다”라고 밝혔다.
공작교육을 받고 독일로 떠나기 전에 신 씨는 “당신이 우리를 이곳에 우격다짐으로 데리고 들어온 과오는 용서할 수 있다. 하지만 내 사랑하는 딸들이 파렴치하고 가증스럽고 저열한 범죄 공모자의 딸이 돼서는 안 된다. 청순한 사람들을 음모의 희생물로 만드는 역할을 해선 안 된다”고 오 박사에게 당부했다.
오 박사는 “3년 전 어느 결혼식장에서 A 교수를 만났는데, 그는 나를 모른 척했다. 우리를 인사시키려 했는데 A 교수가 그냥 가서 결혼식 혼주가 씁쓸해했다”고 전했다.
A 교수는 대학의 고위 보직을 지냈으며 진보성향 단체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다. 이와 관련해 오 박사는 “나는 그를 위해 가족을 버렸는데, 그에게 나는 북한행을 막아준 은인이 아니었던 건가 싶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A 교수는 “결혼식에서 오 박사를 만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독일 유학 때 서울대 선배라 인사 차원에서 2번 만난 게 전부다. 한국에 돌아와 진술하면서 나를 언급했다는 건 간접적으로 들었다. 하지만 내가 그런 활동을 한 것도 아닌데 왜 이름을 들먹이나 싶어 기분 나빴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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