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김명애 씨(가명·50·서울 강남구 대치2동)는 지난달 말 둘째 아들(17) 얘기를 하자마자 눈시울이 붉어졌다.
10년 전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아들은 고교생용 ‘수학의 정석’에 나오는 문제를 풀 정도로 영리했다. 친지들은 “영재학교나 과학고로 보내라”며 부러워했지만 가정 형편이 문제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혼까지 해 생활고에 시달렸다. 세 자녀를 데리고 지하 단칸방을 전전했다. 영재 소리를 듣던 둘째 아들은 불량한 친구들과 어울리다 친구를 때려 사회봉사 명령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김 씨는 화를 내지 못했다. “미안하다. 내 잘못이다”라며 눈물을 흘렸고 그 모습에 충격을 받은 아들은 “죄송하다. 열심히 살겠다”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아들은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다시 책을 폈다. 평소 좋아하던 수학 과학은 금방 따라잡았지만 나머지 과목들이 문제였다. 학원 보낼 여력이 없던 김 씨는 “모르는 것은 성당에 다니는 대학생 형 누나들에게 물어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아들 몰래 인터넷으로 ‘무료 과외’를 받을 수 있는 곳을 찾았다. 무작정 동네 학원을 찾아가 “학원비는 나중에 갚을 테니 수업만 듣게 해 달라”고 빌기도 했다.
그러다 올 6월 김 씨는 동사무소에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성적은 좋은데 형편이 어려운 학생에게 ‘무상 강의’를 해주려는 입시학원이 있다”고 했다. ‘대찬학원’이란 곳이었다. 한걸음에 달려간 김 씨에게 학원 원장은 “듣고 싶은 과목을 다 들어도 된다”고 말했다. 7월부터 학원을 다니는 김 씨의 둘째 아들은 “의대에 진학해 어려운 사람을 돕고 싶다”고 말했다.
대찬학원은 현재 저소득층 가정 고등학생 7명에게 무상 강의 봉사를 하고 있다. 학원비를 받지 않고 원하는 과목을 제한 없이 들을 수 있도록 했다. 대치2동 저소득층 62개 가정 학생들 중 반 석차 10등 내외의 아이들을 동사무소에서 추천받았다. ‘사교육 1번지’라고 불리는 강남 학원가에서 무료 강의 봉사가 진행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박은재 원장(48·여)이 봉사를 결심한 것은 14년 전부터. 한 학원 실장으로 근무하던 그는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아버지가 실직해 돈이 없어 서울대에 합격하고도 대학 진학을 포기해야 했던 학생의 소식을 들었다. 그는 당시 ‘형편이 어렵다는 이유로 꿈을 접어선 안 된다. 학원장이 되면 이런 학생부터 돕겠다’고 결심했다. 그 결심이 14년 만에 현실로 이뤄진 것이다.
박 원장은 “보도가 되면 여기저기서 도와달라고 학생들이 찾아올 것 같아 걱정”이라면서도 “복지관이나 동사무소를 통해 꼭 필요한 학생을 선별해 무료 강의 혜택을 줄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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