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해군출신이다”… 130명 전원구조 ‘설봉호의 기적’ 숨은 주역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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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0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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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탑승 사업가 박상환씨 공포에 떠는 승객들에 “이건 아무것도 아니다” 진두지휘

해군 병장 출신의 40대 사업가가 승객과 승무원 130명이 전원 무사 구조된 여객선 설봉호(4166t)의 기적을 만든 숨은 주역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전남 여수해양경찰서는 “지난달 28일 설봉호 승객 6명이 참고인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승객 박상환 씨(49·대구 서구 내당동·사진)가 승객들의 동요를 막고 비상탈출 시범을 보이는 등 인명 피해를 막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진술했다”고 2일 밝혔다. 박 씨는 이날 동아일보 기자와의 통화에서 급박했던 설봉호 화재 상황을 상세히 기억해냈다. 박 씨는 부인(47)과 함께 제주도 여행을 가기 위해 설봉호를 탔다가 6일 오전 1시 10분경 설봉호에 불이 난 것을 알게 됐다.

박 씨 부부는 서둘러 선수 갑판으로 피신했으나 여객선의 전원이 나가 갑판은 암흑천지여서 승객과 승무원이 구분되지 않았다. 선수 갑판으로 탈출한 승객들은 어둠 속에서 공포에 떨며 우왕좌왕했다.

그 순간 박 씨는 “나는 해군 출신이다. 이 정도 상황은 아무것도 아니다. 질서만 유지하면 모두 살 수 있다”고 고함을 쳤다. 잠시 뒤 설봉호 내부에서 폭발음이 들리자 승객들은 또다시 동요했다.

그러자 박 씨는 “기관실이 폭발한 것이 아니라 배에 실린 차량 타이어가 터지는 소리”라며 승객들을 재차 안심시켰다. 박 씨는 승객들이 갑판에서 사다리를 타고 컴컴한 바다 위의 구명정으로 내려가는 것을 주저하자 직접 시범을 보이며 첫 번째 구명정에 탑승했다. 이후 구명정에 실린 조명탄을 쏘며 구조를 요청했다. 잠시 뒤 여수해경 소속 경비함 317함(460t)이 도착해 구조작전이 펼쳐졌다. 김영태 설봉호 사고보상대책위원장(53)은 “박 씨가 승객들의 동요를 막지 않았다면 모두 흩어졌을 것”이라며 “그는 노약자와 외국인을 먼저 구명정에 태우자고 제안할 정도로 침착했다”고 설명했다.

▼ 朴씨 “기적 만든건 시민정신” 功 돌려 ▼

의류사업을 하는 박 씨는 1983년 9월부터 1986년 7월까지 33개월 반 동안 한국형 구축함 서울함(FF-952·1500t급) 등에서 복무하다 병장으로 제대했다. 서울함은 1984년 취역한 뒤 1990년 우리 해군 최초로 림팩훈련(환태평양 연안 국가의 해군이 참가해 해상교통로 안전 확보 및 해상 분쟁 시 공동대처 능력을 함양하기 위해 미국 하와이 진주만 근해에서 격년제로 실시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연합해상훈련)에 참가해 탑건(TOP GUN)에 선정된 구축함이다. 그는 서울함을 조선소에서 인수하는 병력으로 뽑혀 3개월 동안 화재 등 각종 비상훈련을 반복해 받은 경험이 있다.

구축함 훈련 상황을 생각해보면 설봉호 화재는 아주 급박한 것이 아니었다고 전제한 박 씨는 “구명정에 탑승해 있으면 경비함이 도착해 구조할 것이라고 판단해 객관적인 사실을 전달하고 안심시킨 것”이라며 “일주일에 한두 번씩 무료 급식소에서 노인 700∼800명을 줄 세우는 봉사활동을 하는 경험이 위기 상황에 도움이 됐다”며 밝게 웃었다. 박 씨는 “승객들이 차차 침착함을 되찾고 일부 화물차 운전사들이 구명정을 붙잡기 위해 어두운 바다로 뛰어드는 등 뛰어난 시민정신을 보여줘 설봉호의 기적이 가능했다”고 강조했다. 한편 여수해경은 설봉호 화물칸에 실린 활어차에서 처음 발화가 됐다는 국립수사과학연구원 1차 현장검증을 토대로 정확한 화재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여수=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대구=장영훈 기자 jang@donga.com  

▲동영상=여객선 설봉호 화재사고, 긴박했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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