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3월 어느 날, 서울 신도림중학교 3학년 8반에서 수학수업을 듣던 학생들 중에는 손명국 군(17·서울 환일고 2)이 있었다. 선생님이 칠판에 수학문제를 적었다. “나와서 풀어볼 사람?” 손 군은 정적을 깨고 손을 번쩍 들었다. 분필을 집어 들고 풀이과정을 칠판에 써나갔다. 답까지 쓴 뒤 마침표를 찍었다.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풀이과정과 답 모두 맞았어요!” 이 순간은 손 군의 인생에서 결정적인 전환점이었다. 왜냐하면 중2까지만 해도 자타공인 ‘샤이보이’였던 손 군은 친구들 앞에 당당히 서서 문제를 푸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간 손 군을 부쩍 소극적인 성격으로 만든 ‘주범’은 판타지 소설이었다. 어느 날부턴가 판타지 소설에 빠지면서 친구들과 놀거나 운동하는 시간이 더 줄어들었다.
“(판타지 소설을) 한번 읽기 시작하면 열 권은 후딱 읽었어요. 주말에도 나가 노는 것보다 판타지 소설 읽는 것을 더 좋아했죠. ‘드래곤 라자’ ‘세월의 돌’ ‘룬의 아이들’ 등 웬만한 작품은 읽었어요.”
판타지 세계에 빠져있던 손 군이 ‘현실세계’로 돌아온 건 중2 2학기 중간고사 성적표를 받고 나서부터.
“1학년 때는 성적이 반에서 10등 내외로 나왔는데…. 2학년 때는 20등까지 떨어졌어요. 충격이었죠. 더 늦기 전에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판타지 소설을 끊었다. 마음을 다잡았다. 예·복습도 하고 수업시간에 집중했다. 하지만 성적의 변화는 없었다. 바닥까지 추락한 자신감이 근원적인 문제였다.
“다른 친구들 앞에 내세울 게 없다 보니 의기소침했어요. 학습태도도 다르지 않았어요. 모르는 문제가 나와도 선생님이나 친구들에게 물어보지 못하고 그냥 넘어가기 일쑤였거든요. 뭔가 자신감을 회복할 계기를 찾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손 군은 ‘수학’으로 눈을 돌렸다. 어려서부터 왠지 수학이 좋았다. 암기를 유독 싫어했던 손 군으로선 기본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고 계산을 하면 답이 딱 떨어지는 수학이 매력적이었다. 어려운 문제가 결국 풀릴 때 피부로 느끼는 짜릿함도 좋았다. 초등학교 때 아버지의 도움으로 매일 수학공부를 했던 손 군에겐 기본기도 있었다.
“수학이라도 월등히 잘하면 경쟁력이 생기고 자신감도 늘 것 같았어요.”
중2 겨울방학을 ‘터닝 포인트’로 삼았다. 하루 3시간씩 중3 수학을 혼자 예습했다. 먼저 개념정리를 할 문제집을 풀었다. 다음엔 심화·응용문제가 담긴 문제집을 선택했다. 이해와 반복을 중시했다. 모르는 문제는 오답노트에 베껴 적었다. 답지를 보고 이해한 후 다음 날 다시 풀이과정을 손으로 적었다. 그래도 풀지 못하면 별표로 표시해뒀다가 반복해 풀었다.
중3이 시작되자 노력은 결실을 이뤘다. 수학 성적이 점차 올랐다. 2학기 중간, 기말고사를 합해 수학과목에서 전교 6등을 하게 된 것이다.
어려운 수학문제를 들고 찾아오는 친구도 생기기 시작했다. 풀이법을 설명해주다 보니 친구들과의 대화에도 자신감이 생겼다. 이제 손 군은 친하지 않은 친구에게도 먼저 말을 걸 만큼 적극적인 성격으로 바뀌었다.
중3 겨울방학이 시작되자 그간 수학에만 집중된 공부방식에 변화가 필요했다. 한 살 터울의 형은 “고등학교 가서 수학만 잘해서는 원하는 대학에 진학할 수 없다”고 조언해주었다.
고교 입학 전 치르는 배치고사 준비와 고교 교과목 예습을 함께 했다. 국어는 이틀에 한 번 문학작품을 예·복습하고 문제집을 풀었다. 영어는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문제집을 풀면서 지문 내용을 파악하고 모르는 단어는 수첩에 정리해서 외웠다.
손 군의 노력은 다시 한 번 빛을 발했다. 배치고사에서 전교 4등을 차지한 것.
“중학교 내신 성적으로만 따지면 입학 시 제 성적은 전교 224등이었거든요. 배치고사를 보고 난 뒤 ‘느낌’은 좋았지만 전교 4등은 상상도 못했죠.”
입학 직후 3월 모의고사에서는 언어, 수리, 외국어 세 과목에서 300점 만점에 283점을 받았다. 전교 4등.
1학년 2학기 때는 난생처음 친구들로부터 학급 반장 후보에 추천도 받았다. 투표에서 2등을 차지해 부반장을 맡았다. 2학년 1학기 때도 부반장이 됐다.
“반장, 부반장은 대단한 아이들만 하는 줄 알았어요. 공부를 잘한 것보다는 활달하게 바뀐 성격이 저를 이렇게 만들어준 것 같아요. 지금 친구들은 제가 과거 ‘조용한 아이’였다고 말하면 깜짝 놀라요.”
성적도 성격도 변하면서 다시 태어난 손 군. 여러 사람을 즐겁고 행복하게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그의 목표는 의사가 되는 것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