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 노사관계’를 기치로 시작했던 복수노조 제도가 실시 100일(이달 8일)을 넘었다. 고용노동부는 10일 “국내 노동운동이 노동조합 난립 등 부작용 없이 현장 목소리를 반영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고 자평했다.
복수노조 도입 100일 점검 결과 신규 노조 대다수가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등 상급노조 없는 독립노조로 출범했다. 국내 노조의 고질적 문제였던 상급 단체에 의한 ‘정치색’이 옅어진 것. 하지만 대규모 사업장에서는 과반수 노조를 배출하지 못해 중소 사업장 위주의 ‘찻잔 속의 태풍’에 그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복수노조 100일을 4가지 포인트로 짚어 봤다.
○ 양대 노총 대신 독립노조
고용부에 따르면 9월 말까지 신고된 복수노조는 498개. 7월엔 하루 평균 10.4개의 노조가 만들어졌으나 8월 3.5개, 9월 2.3개로 증가 추세가 꺾였다. 신설된 노조의 85.6%인 426곳이 양대 노총 가입 대신 독립노조로 남았다.
이 중에서 각 사업장에서 노조 조합원 과반수를 차지한 곳은 111곳(28.7%)이었다. 시행 초기인 7월 기준 21%에서 늘어났다. 고용부 측은 “현장 근로자들이 정치 투쟁 대신 실리 위주의 노동운동으로 옮겨가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 “과격 분규 싫다” 새 경향
과격한 분규를 많이 겪은 사업장일수록 신규 복수노조가 회사 대표 노조로 발돋움했다.
민주노총에서 분화된 129개 노조의 절반이 넘는 65곳(50.4%)이 사업장 교섭권을 가진 과반수 노조가 됐다. 민주노총 사업장으로 사측과 교섭하던 회사에서 독립노조로 많이 옮겨갔다는 뜻이다. 한국노총 분화 노조 중 과반수 노조가 된 곳은 34곳(20.9%)에 그쳤다.
권혁태 고용부 노사협력정책관은 “노사갈등이 심했던 사업장일수록 분화된 신규 노조가 과반수 노조를 차지했다”며 “장기 파업 등의 원인으로 민주노총 사업장의 노사관계가 좋지 않았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실제 노조 간 경쟁이 시작되자 복수노조 시행일인 7월 1일부터 9월 30일까지 전국의 파업분규는 24곳에서 발생해 지난해 같은 기간 33곳에 비해 27%가량 줄었다.
○ 양대 노총 “주 사업장은 여전히 건재”
폭발적인 증가세에도 불구하고 복수노조의 실질적인 영향력은 미약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100일 만에 약 500개 노조가 출현했지만 그중 237곳이 택시·버스 사업장이다. 과반수를 차지한 신규 복수노조 중 가장 규모가 큰 사업장이 중부발전(근로자 2183명) 남부발전(1896명) 서부발전(1840명) 등이다. 기존 민주노총 산하 발전노조가 복수노조로 옮겨온 것을 제외하면 금속노조와 금융노조 등 양대 노총 주력 사업장에는 복수노조 바람이 불지 않았다. SK케미칼 등 대규모 사업장에서 생긴 복수노조도 곧 해산했다.
이성희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양대 노총이 장악한 대규모 사업장은 조직력이 강하고 다양한 갈등을 해결한 경험이 있어 기존 구도를 바꾸기 힘들다”며 “앞으로도 상당 기간 복수노조 등장이 힘들 것”으로 전망했다.
○ 복수노조는 어용노조?
‘어용노조’ 논란도 복수노조 정착의 걸림돌이다. 사측에서 기존 노조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복수노조를 세워놓고 근로자에게 가입을 권유한다는 주장이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 기간에도 경북 구미 전자부품업체인 KEC 어용노조 논란이 국감장에서 벌어졌다. 고용부 관계자는 “9월 1일부터 어용노조 등 부당노동행위 20건을 신고 받았다”며 “그중 1건은 이미 사법처리한 상태로 나머지도 혐의가 있다면 조사 후 엄중 단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