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살인사건 용의자 美 도피땐 치떨어…이번엔 꼭 법정에 세워 한 풀어야”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0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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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태원 살인사건 피해자 어머니 이복수 씨

아들 피살 이틀 전 함께 찍은 사진 사건 발생 이틀 전 조중필 씨(오른쪽)가 어머니 이복수 씨와 함께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에서 다정한 모습으로 찍은 마지막 사진. 채널A 촬영 영상 캡처
아들 피살 이틀 전 함께 찍은 사진 사건 발생 이틀 전 조중필 씨(오른쪽)가 어머니 이복수 씨와 함께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에서 다정한 모습으로 찍은 마지막 사진. 채널A 촬영 영상 캡처
“이번에는 우리 중필이 한이 풀릴 수 있을까요…. 미국 판사가 살인한 사람을 감싸면 안 되는데….”

14년간 아들을 가슴에 묻고 살아온 어머니는 말을 다 잇지 못했다. 지난 세월의 고통은 어머니의 굵은 주름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사진첩 속 아들은 그 옛날 그대로 환하게 웃고 있는데 어머니는 여전히 아들의 한을 못 풀어준 것이 마음에 걸리는 듯 눈시울만 붉혔다.

1997년 4월 3일 발생한 일명 ‘이태원 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인 아서 패터슨(32)이 미국에서 붙잡혔다는 소식이 알려진 11일. 당시 피해자인 고 조중필 씨(당시 23세·홍익대 전파공학과)의 어머니 이복수 씨(69)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 자택에서 가진 채널A와의 인터뷰에서 긴 세월 풀 수 없었던 아들의 한이 이번에는 풀릴 수 있을지 실낱같은 기대를 보였다.

이 씨는 “사건 후 도망간 패터슨이 (한국으로) 송환돼 재판을 받게 해달라고 매일 빌었다”며 “(패터슨이) 미국에서 잡혔다니 이번에는 꼭 송환과 재판이 이뤄져 아들의 한을 풀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패터슨은 친구 에드워드 리(32)와 함께 이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됐던 인물. 당시 검찰은 리를 살인 피의자로, 패터슨은 흉기소지 혐의로 기소했지만 패터슨은 1998년 8·15 특사로 사면됐고 1999년 8월 출국금지 기한 만료로 미국으로 출국했다. 리는 같은 해 9월 대법원에서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를 받았다. 검찰은 다시 패터슨을 범인으로 지목하고 재수사에 착수했지만 이미 미국으로 출국한 뒤라 수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둘 중 하나는 분명히 범인이었지만 아무도 죗값을 받지 않은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이후 이 씨는 패터슨의 한국 송환과 재수사를 요구하는 집회를 쫓아다니고, 시민을 상대로 일일이 서명을 받기 시작했다.

“밥을 먹으면 화장실을 다녀오잖아요. 화장실 다녀오는 시간이 아까워 밥도 굶고 길에 나가 종일 서명을 받았어요. 누군가 서명을 해주면 고마워서 울고, 안 해주면 야속해서 울었죠.”

악으로 버틴 시간. 힘들고 서러웠지만 이 씨는 멈출 수가 없었다. 부실한 검찰 수사에 대해 대법원까지 가는 법정 투쟁을 벌여 2006년 배상금 3400만 원을 받아냈지만 위안이 되지는 못했다. 이 씨는 “내 앞으로 1500만 원, 중필이 아버지 앞으로 1500만 원, 누나들 몫으로 (배상금이) 조금 나왔지만 자식이 죽었는데 다 무슨 소용이겠느냐”며 말을 잇지 못했다.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은 아들을 죽인 사람들이 법의 심판을 받길 바라는 마음에서 제작에 동의했다. 다행히 2009년 이 영화가 개봉된 뒤 재수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지만 이 씨는 이 영화를 차마 볼 수 없었다. 이 씨는 “예고편만 보고도 얼마나 가슴이 떨렸는지 모른다”며 “내 자식이 칼로 찔려 죽는 영화를 어떻게 볼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이 씨는 패터슨이 미국에서 체포돼 한국 송환을 위한 인도재판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8월에 들었지만 여전히 마음을 놓지 못하고 있다.

“(한국에) 들어와 재판을 받아야 (사건이 진짜) 끝나지, 아니면 소용없잖아요. 법무부에 물어봐도 한국에 보낼지 말지는 미국 판사 마음이라네요. 답답해요. 재판이 1년이 갈지, 2년이 갈지 아무도 알 수 없고….”

이 씨는 “당시 미군에서 한국 경찰에 넘겨줄 때 왜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패터슨을) 내보냈느냐”며 “한국 법이 (참) 무능한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이 씨는 “지금도 중필이 얘기만 나오면 분해서 (온몸이) 덜덜 떨린다. 걔들이 뭔데 착한 내 아들을 죽였는지, 시비가 붙은 것도 아니고 (사람을) 재미삼아 찔렀다니 아직도 기가 막힌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임수정 채널A 기자 sue@donga.com  
강버들 채널A 기자 oisea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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