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정부 문화공약 12개 점검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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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0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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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창작발전소’ 주민반대 막혀 4년째 표류

《영국 런던의 테이트 모던 갤러리는 템스 강변의 흉물이 된 폐발전소를 리모델링해 2000년 개관한 미술관으로 영국 현대미술의 상징적 공간이다. 프랑스 파리 오르세 미술관 역시 센 강변의 방치됐던 기차역을 새로 꾸며 1986년 개관한 이후 연간 700만 명이 관람하는 파리의 문화명소로 자리매김했다. 2007년 9월 이명박 당시 대통령 후보자는 서울 마포구 당인동 한강변의 서울화력발전소(당인리발전소)의 마지막 발전시설인 4, 5호기가 2012년 수명을 다하면 해당 용지를 매입해 예술인들의 창작 공간인 ‘문화창작발전소’로 만들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1930년 건립돼 노후한 국내 최초의 화력발전소를 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키려는 이 계획은 이 후보자의 대표적 문화공약이었다. 하지만 4년여가 흐른 지금 이 약속은 표류하고 있다. 정부는 당인리발전소를 폐지하고 대체 발전소를 경기 고양시에 짓기로 했지만 고양시가 반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대체 후보지를 찾지 못한 정부는 현재 당인리발전소 위치에 50MW(메가와트)급 액화천연가스(LNG) 화력발전기 두 기를 2015년까지 새로 짓기로 했다. 그 대신 발전시설을 지하에 짓고 지상을 녹지공간으로 꾸미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주민들은 소음과 안전성 등에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저지운동을 벌이며 반대하고 있다. 서울화력발전소는 7월 발전소를 지하에 건설하기 위한 인가 신청을 관할 마포구에 냈지만 마포구는 “정부와의 협의가 아직 진행 중이다”는 이유를 들어 열하루 뒤 이를 반려했다.》

동아일보는 차기 정부 대선을 1년가량 남긴 시점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 중 문화예술 분야 12개 세부 공약이 얼마만큼 이행됐는지 점검했다. 검토 결과 12개 공약 가운데 약속대로 완전 이행한 것은 3개, 부분적 성과를 내면서 진행 중인 것은 4개였다. 5개 공약은 중도 포기하거나 이행하지 못한 것으로 조사됐다.

○ 지역-부처 갈등에 공약 이행 밀려

당인리발전소의 문화창작발전소 전환은 지방자치단체와 지역주민의 이해관계 조정에 실패한 탓에 사상누각으로 전락할 운명에 처했다. 문화예술인공제회 설립과 국가디자인위원회 설치 공약은 정책 시행 과정에서 부처 간 갈등으로 표류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009년 문화예술인 공제사업 등 문화예술인 복지 관련 규정 강화를 내용으로 한 문화예술진흥법 개정안 입법을 추진했지만 부처 간 협의 과정에서 무산됐다. 이후에도 18대 국회에서 예술인 복지 관련 법안 4건이 발의됐지만 역시 기획재정부, 고용노동부 등의 반대로 국회에 계류 중이다. 예술인을 근로자로 인정하는 게 맞는지, 재정 부담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논란을 해소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통령 직속 국가디자인위원회 설치 공약도 사실상 무산됐다. 위원회 설치를 골자로 한 디자인기본법이 2008년 발의됐지만 소관부처를 문화부에 두는 것에 대해 지식경제부와 국토해양부, 행정안전부가 반대하면서 ‘추진만 검토’한 채 국회 문방위에서 낮잠을 자고 있다.

국외 문제가 걸림돌이 된 공약도 있다. 한중일 간 전략적 문화협력체제 구축 공약은 일본 지진과 중-일 외교 갈등으로 진전이 없는 상태다. 3국이 모두 참여하는 문화 관련 협의체로는 민관 전문가가 참여하는 한중일 문화콘텐츠산업포럼이 있지만 이는 2002년 시작됐다.

핵심 콘텐츠산업의 경쟁력을 확보해 한국을 세계 5대 문화산업 국가로 발전시키겠다는 공약은 차기 정부로 시한이 미뤄졌다. 콘텐츠산업의 진흥을 위해 11개 부처가 모인 콘텐츠산업진흥위원회는 올해 5월에 이르러서야 1차 회의를 열었다. 이 회의에서 정부는 문화산업의 핵심인 콘텐츠산업 5대 강국 달성 목표시점을 2015년으로 잡았다.

○ 디자인 R&D 비중, 공약과 반대로 줄어

대선 세부 공약 12개 중 디자인 관련 공약은 전체의 3분의 1(4개)에 이를 정도로 비중이 컸지만 성과는 적었다. 정부는 국가 연구개발(R&D) 예산 가운데 디자인 분야의 비율을 높이겠다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기획재정부와 지경부에 따르면 국가 R&D 예산은 지난 정권에서 편성한 2008년 11조 원보다 2011년 예산안 기준 14조9000억 원으로 늘었지만 같은 기간 디자인 R&D 예산 비중은 0.25%에서 0.18%로 오히려 줄었다.

절대적 비중 자체도 작지만 추이를 살펴봐도 △2009년 0.22% △2010년 0.18% △2011년 0.18%로 계속 줄었다.

디자인 교육 강화도 눈에 띄는 성과가 보이지 않는다. 특히 디자인 조기교육과 관련해서는 전국 8개 초등학교를 ‘연구학교’로 지정해 5, 6학년을 대상으로 창의재량시간에 디자인 교육을 실시하는 미미한 단계에 머물고 있다.

단, 디자인 기업 중점 지원 약속 공약은 2011년 40억 원의 예산을 편성해 디자인 기업 역량강화사업에 나서면서 실적을 내고 있다.

전통문화의 창조적 계승 공약과 관련해서도 그나마 가시적 성과가 눈에 띄지 않는다. 국악을 해외에 소개하기 위한 기반 작업이 본격화했지만 현재 진행되는 사업은 노무현 정부 때 시작한 것이 많다. 이명박 정부 들어 시작한 창작 국악 실험무대 ‘천차만별 콘서트’(2008년), 전통예술 연주인턴 지원사업(2009년)은 이제 자리를 잡아가는 단계다.

지역근대산업유산 예술창작벨트화 공약과 관련해서는 경기 포천의 폐채석장을 리모델링한 포천아트밸리가 올해 말 완공을 앞두고 있다. 내년까지 충남 아산, 전북 군산, 대구, 전남 신안 등 4개 시설도 준공할 계획이다.

○ 저작권 보호, 공공디자인상 등은 성과


정권 출범 3년 8개월 동안 완전 이행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는 문화 관련 공약은 3개다. 전국 국공립박물관 및 미술관 무료 관람 공약은 정권 출범 초기인 2008년 5월 시행돼 지금껏 이어지고 있다. 사립미술관과 박물관 등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서민가계의 부담을 줄이고 문화소비 양극화를 해소하는 차원에서 당분간 무료 관람을 유지하기로 했다.

글로벌 경쟁력을 위한 시장 시스템 정립을 위해 저작권 보호 정책을 지속적으로 편 결과 지식재산권 감시대상국에서 2009년 이후 2년 연속 제외되는 성과를 올렸다. 불법 저작물 추적관리 시스템을 구축해 대응하고 있다.

디자인 정책과 관련된 유일한 성과로는 공공디자인상 제정이 꼽힌다. 문화부와 행정안전부가 공동으로 2008년 ‘대한민국 공공디자인 대상’을 만들어 지금까지 목포시의 ‘테마가 있는 아름다운 숲길’, 서울문화재단의 ‘문화가 있는 놀이터’, 경기도립공원의 ‘남한산성 역사공간 디자인’ 등에 대상을 줬다.

곽민영 기자 havefun@donga.com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정부는 당인리발전소(위 사진)를 문화창작발전소로 리모델링할 것을 약속했지만 지자체와 지역 주민의 갈등 속에 좌초 위기에 빠졌다. 아래 사진은 공공디자인 대상에 선정된 서울문화재단의 ‘문화가 있는 놀이터’. 서울문화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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