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조 굴리던 ‘바이코리아펀드 신화’ 법정서 눈물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0월 15일 02시 00분


영장심사서 “뼈저리게 반성”
법원 “도주 우려 없다” 기각

굳은 표정으로 재판관 앞에 선 장인환 KTB자산운용 대표(52·사진)가 꾹 다물었던 입을 열었다. ‘펀드의 신화’로 불렸던 장 대표는 13일 열린 영장실질심사에서 한없이 초라하기만 했다. 그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바이코리아펀드 돌풍’을 일으켰다. 이 펀드는 판매된 지 석 달여 만에 12조 원의 자금을 끌어 모으며 당시 ‘국민 펀드’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장 대표는 이 중 5조 원가량을 운용해 450억 원이 넘는 이익을 회사에 안기기도 했다. 그 성공을 발판으로 1999년 KTB자산운용을 창업해 지금까지 최고경영자(CEO) 직을 지켜 왔다.

그런 장 대표에게 시련이 닥친 것은 지난해 부산저축은행에 투자하면서부터. 그는 포스텍과 삼성꿈장학재단에 500억 원씩 모두 1000억 원을 부산저축은행그룹의 유상증자에 참여하도록 권유했다. 하지만 부산저축은행그룹의 부실이 악화되면서 포스텍과 삼성꿈장학재단은 투자금을 모두 날렸다. KTB자산운용은 지난해 검찰 수사가 시작되기 전까지 12조 원의 자산을 운용했지만 현재는 8조 원으로 줄었다.

그는 법정에서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어려운 시절을 보내 고객의 돈이 얼마나 소중한지 잘 알고 있습니다. 하물며 어려운 학생들을 위한 장학기금에 엄청난 손실을 입혔으니 지금까지 겪은 고통은 마땅히 감수해야 할 것입니다”라며 머리를 숙였다. 그러면서 “조금 더 신중하지 못했던 부분은 뼈저리게 반성합니다. 다만, 구속이 돼 회사가 더는 살아남을 수 없을까 두렵습니다”라며 선처를 호소했다. A4용지 3장 분량으로 준비해온 마지막 발언을 끝낸 뒤에도 그는 눈물을 흘리며 한동안 법정을 떠나지 못했다.

그의 눈물이 통했던 걸까. 부산저축은행의 1000억 원대 유상증자를 주선하면서 투자자에게 허위 정보를 제공한 혐의(사기적 부정 거래)로 장 대표에 대해 대검 중수부가 청구한 구속영장이 14일 기각됐다. 김상환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범죄 혐의에 대해 다툴 여지가 있고 증거 인멸 및 도주 우려가 없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신민기 기자 mink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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