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교육과학기술부가 욕을 심하게 하는 학생을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하고 입시 때 학교장 추천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침을 검토할 만큼 청소년 욕설이 사회문제화한 가운데, 한 중학교가 개교 이래 학생들이 욕을 쓰지 못하도록 하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프로그램을 실행해 주목받고 있다. 2009년 개교한 서울 영훈국제중이 바로 그 주인공.》 [1] 또래지킴이로 스스로 관리를
서울 영훈국제중은 학생들의 욕을 ‘발본색원’ 하기 위해 구체적, 현실적인 지도 프로그램을 실행한다. 영훈국제중 학생들이 올바른 언어습관을 선도하는 내용의 포스터를 들고 있다. 영훈국제중 제공
‘또래지킴이’는 학생 스스로가 학생들의 생활관리를 하도록 유도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남학생 여학생 각 1명으로 구성된 학급 당 2명이 해당 학급의 ‘선도’를 담당하는 것. 학급회장, 부회장과 더불어 학기 초 선거를 통해 선출된다.
또래지킴이의 주요역할은 친구들이 평소 학교규정에 따라 올바르게 생활하는지를 지켜보고 때론 지도, 관리하는 것. 만약 교실 내에서 학생들이 욕설을 할 경우 이런 행위를 일차적으로 제지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그럼에도 해당 학생의 언행이 고쳐지지 않으면 또래지킴이는 담임교사에게 이를 알리는 의무와 권한을 갖는 것.
이와 동시에 또래지킴이는 친구들이 학교나 선생님들에게 바라는 건의사항을 모아 학생을 대표해 학교 측에 전달하는 일도 한다. 길거리에 떨어진 쓰레기를 줍거나 분실된 물건의 주인을 찾아주는 등 선행을 한 학생을 발견할 경우 선생님에게 알려 상점을 받게끔 하는 기능도 한다.
이 학교 이충근 도덕교사는 “또래지킴이는 감시하고 고자질을 하기보다는 학생 또래집단 자체적으로 학교생활을 정화해보자는 취지에서 마련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2] 입학 전 서약서 서명
교사가 벌점을 부과할 경우 “근거가 있느냐”며 반발할 경우에 대비해 이 학교에서는 입학 전 오리엔테이션 과정에서 학생과 학부모로부터 ‘학교 교육과정과 프로그램에 동의하고 학교의 전통과 명예를 지킬 것’을 약속하는 ‘서약서’를 받는다. 또 오리엔테이션에서 욕을 할 경우 어떤 벌점을 받는지를 상세히 설명한다. 특히 ‘∼년’ ‘∼새끼’처럼 요즘 중학생들이 일상적으로 내뱉는 수준의 비속어까지도 사용할 경우 모두 벌점 대상이며 벌점이 누적되면 중징계에 이를 수 있음을 경고한다. 입시를 통해 선발된 신입생들인 만큼 ‘올바른 언어습관이 글로벌 리더로 성장하기 위한 필수요소’임을 강조하는 것.
[3] 욕에도 ‘등급’이 있다
이 학교는 구체적인 근거에 따라 학생들을 지도하고 상벌점을 주기 위해 욕설의 경우도 그 정도에 따라 벌점을 2∼5점으로 차등 부과하는 대체적인 기준을 내부적으로 공유하고 있다. 대화 중 튀어나온 비속어와 상대에게 모욕감을 주는 욕설은 벌점을 줄 때도 구분되어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년’ ‘새끼’ 같은 비속어는 벌점 2∼3점에 해당하지만, ‘씨×’ ‘×같다’ ‘FU××’ ‘Mother Fu××××’처럼 성적(性的) 비유를 담거나 ‘ㅆ’이 들어가는 욕은 더 심한 욕설로 분류해 벌점 5점을 준다. 단, 성적요소가 담긴 욕설이지만 청소년들 사이에 흔히 사용되는 ‘졸라’ ‘존나’ 같은 욕은 벌점 2점이다. 듣는 사람이 기분이 나쁠 정도의 심한 욕이면 5점, 친구들끼리의 대화 중 불쑥 나오는 비속어는 2점 또는 3점이다. 단, 상대적으로 가벼운 비속어를 사용했을지라도 과거 비슷한 사례로 벌점을 받은 기록이 조회될 경우 최대치인 5점을 받을 수도 있다. 일종의 ‘가중처벌’인 셈.
벌점 5점은 학생들에겐 무시할 수 없는 점수. 벌점이 누적돼 10점이면 학생회장 후보 등록 자격을 박탈당한다. 벌점 20점이 누적되면 수업정지, 30점이면 등교정지에 해당된다. 벌점 40점이면 해당 내용이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되고, 60점이면 전학을 권고 받는다.
교사에게 욕설을 할 경우는 정도와 무관하게 곧바로 선도위원회에 회부돼 징계를 받는다. 교감, 부장교사, 상담교사 등 약 10명의 교사로 이뤄지는 선도위원회는 △욕을 발설할 당시 상황 △그간 생활태도 △상담교사 의견 등을 종합 고려해 충분한 논의를 거쳐 징계수위를 결정한다.
매우 드문 사례이긴 하지만, 교사에 대한 욕설을 노트에 썼다가 적발된 학생 A 군의 징계 사례를 들여다보면 영훈국제중의 징계결정과정이 얼마나 정치(精緻)한지를 확인할 수 있다. A 군은 숙제 노트에 교사가 ‘좀더 노력하라’는 코멘트를 적어주자, 그 밑에 교사에 대한 욕설을 적어 넣었다가 발각된 경우.
충격을 받은 교사는 이 내용을 교내 인성교육부에 알렸고, A 군에게 해당 사실을 확인한 인성교육부는 1주일 뒤 선도위원회를 열었다. 교사를 상대로 한 욕설은 학교규정에 따른 징계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였다. 교사 10여 명이 참여한 선도위원회 회의는 2시간 넘게 이어졌다. “선처해 주자”는 의견도 나왔지만 A 군이 이전에도 교내에서 싸움을 하는 등 다수의 문제를 일으킨 데다, 전년에도 비슷한 사건으로 한 학생이 전학을 권고 받고 전학을 간 사례가 있어 ‘형평성을 고려할 때도 징계해야 한다’는 쪽으로 결론이 모아졌다. 결국 A 군은 선도 규정에 의거해 ‘전학 권고’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이 학교 곽상경 교장은 “대부분 사춘기를 겪는 중학생 시절에 언어습관을 확실히 바로잡지 않으면 욕설은 평생 습관이 되어 고치기 어려울 것”이라며 “입학 전부터 학교규정을 정확히 설명하고 이를 지키지 않으면 징계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지시키므로 운영 상 큰 문제가 발견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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