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가 2월 문화체육관광부에 보낸 ‘사업계획 조기 승인 요청’이라는 제목의 공문. ‘주경기장 신설은 국비 보조 없이 시행’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2014년 열리는 아시아경기대회를 치르는 데 사용할 주경기장 건립에 필요한 국고지원 여부를 놓고 인천에서 책임 논란이 빚어지고 있다. 인천시는 “정부에 수차례 도움을 요청했으나 지원을 외면했다”며 시민들을 동원해 서명운동에 나서는 등 정부를 압박해 왔다. 그러나 시가 국고지원을 포기하는 공문을 정부에 보낸 뒤 독자적으로 추진하다 사업비를 마련하기가 힘들어지자 시민들을 앞세우는 낯부끄러운 행정을 펴고 있다는 지적이다.
17일 시에 따르면 2008년에 시는 아시아경기대회를 유치한 뒤 정부에 민자유치를 통해 7만 석 규모의 주경기장을 서구 연희동에 신축하겠다는 방안을 제시했다. 정부는 예산낭비 등을 우려해 2002년 월드컵축구대회가 열렸던 남구 문학경기장을 리모델링해 사용할 것을 요구했으나 시가 신축 방안을 고수해 결국 승인했다.
하지만 지난해 취임한 송영길 인천시장은 시의 재정난을 감안해 정부가 당초 제시했던 문학경기장 리모델링 방안을 채택하려고 했다. 그러자 주경기장 건설 예정지인 서구 주민들이 강하게 반발했고 결국 규모를 줄여 신축하는 것으로 방침을 바꿨다. 당초 5400억 원을 들여 7만 석 규모로 지을 예정이었지만 6만 석으로 줄였다. 단 사업방식은 민자유치가 아니라 시의 예산을 투입하기로 했다.
이어 시는 2월 아시아경기대회 관련시설 사업계획 승인신청이 나지 않아 주경기장 착공이 늦어지자 송 시장의 결재를 받아 문화체육관광부에 공문을 보냈다. ‘주경기장 신설을 국비 보조 없이 시행할 테니 사업계획이 조기에 승인될 수 있도록 협조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또 시는 5월 ‘아시아경기대회 관련시설의 설치·이용 등에 관한 계획 변경안’을 만들어 ‘주경기장은 사업방식을 민자사업에서 재정사업으로 변경해 국비 지원 없이 전액 시비로 건설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사실상 국고지원 요청을 철회한 것으로, 시는 6월 주경기장을 착공했다.
시는 국제대회지원법의 규정을 들어 주경기장 건설사업비 4899억 원의 30%인 1470억 원을 지원해 달라고 요구했으나 정부는 이를 거부했다. 국비를 지원하지 않는 조건으로 주경기장 신축을 승인한 점을 들었다.
국고지원 여부를 놓고 실랑이를 벌이는 동안 시의 재정적자가 계속 늘어나 지방채 발행 등을 통한 사업비 충당도 불가능해지자 시는 시민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2002년 아시아경기대회가 열린 부산의 경우 전체 사업비의 35.9%를 국고로 지원했지만 인천은 20.6%에 불과한 데다 주경기장 건립비마저 지원받지 못하면 18.5%로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정부와 여권 등이 인천을 외면하고 있다는 논리를 폈다.
결국 5일부터 인천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이 ‘주경기장 건립 국고지원을 요구하는 100만 명 서명운동’에 나섰고, 한나라당 인천시당은 정부에 국비지원을 요청했다. 최광식 문화부 장관은 최근 열린 국정감사에서 “인천시가 국고지원에 필요한 주경기장 건설사업 변경 승인을 요청하면 국제대회지원법에 따라 지원을 추진하겠다”고 밝혔고, 서명운동은 일시적으로 중단됐다. 한 시민단체 대표는 “시가 공문을 보내 국고지원을 포기한 것은 감춘 채 정부의 무관심만을 지적해 서명운동에 동참했다”며 “시가 아무런 대책도 없이 주경기장을 착공한 뒤 시민들을 앞세운 과정을 낱낱이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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