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 전부터 이모 씨(44)는 ‘사망자’ 신분이었다. 태어나자마자 아버지가 숨졌다. 어머니도 갓난아기를 두고 떠났다. 이 씨는 할머니 손에서 젖 대신 막걸리 지게미를 먹으며 자랐다. 이 씨가 스무 살 되던 해 할머니마저 세상을 떠나자 이 씨는 혼자가 됐다.
이 씨가 11세 때 큰아버지는 이 씨를 자신의 아들로 출생 신고했다. 하지만 1992년 이 씨의 큰아버지가 사망하자 가족들은 연락이 닿지 않는 이 씨의 호적을 정리하기로 했다. 이때 이 씨는 절도죄로 안양교도소에서 복역 중이었다. 이 씨도 모르는 사이 법원에서 실종선고심판이 확정돼 이 씨는 1995년 5월 15일 ‘망자(亡者)’가 됐다.
“출소한 뒤 막노동이라도 해보려고 했지만 그곳에서도 신분증을 요구했습니다.” 생계가 막막했던 이 씨는 다시 범행을 저질렀다. 1986년 첫 수감 이후 지금까지 그는 19년 6개월여를 교도소에서 살았다. 올해 5월 30일 출소한 뒤 21일 만에 이 씨는 서울 종로구 관철동의 한 빌딩 앞에서 술에 취해 쓰러져 잠을 자고 있는 취객의 지갑을 훔치려다 현장에서 경찰에 체포됐다.
이 씨는 재판 과정에서야 ‘사망자’ 신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재판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 김형두 부장판사와 변론을 맡은 남현우 국선전담변호사의 배려로 이 씨는 8월 주민등록번호를 갖게 됐다.
18일 서울중앙지법에서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절도 혐의로 기소된 이 씨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이 열렸다. 검찰은 기구한 이 씨의 사연을 감안해 최대한 형량을 낮춰 징역 3년을 구형했다. 배심원단도 유죄 인정에 징역 3년 의견을 내놓았다. 재판부도 배심원단 평결과 같이 징역 3년을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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