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당창작아케이드 입주 예술가 조수정 씨(오른쪽)가 18일 성동공고에서 열린 ‘황
학여지도’ 수업에서 황학동의 이미지를 장신구로 표현하는 방법을 학생에게 설명하고
있다. 서울문화재단 제공
“동판에 전사지(유리질로 된 그림을 금속 위로 옮기는 데 쓰이는 종이)를 올려놓고 이렇게 가마에 넣어 봐요. 불이 붙으면서 그을음이 생기죠? 동판 그림이 선명해질 때 가마에서 꺼내면 되는 거예요.”
18일 오전 11시 서울 중구 흥인동 성동공업고등학교 5층 금속디자인 교실에서 공예가 서지은 씨(33·여)가 학생들에게 전통 칠보(七寶) 기법을 기초부터 가르치고 있었다. 서 씨는 이 학교 교사가 아니다. 학교 옆 황학동 신당창작아케이드에 입주해 작품 활동 중인 전문 예술인이다. 서 씨는 신당창작아케이드가 8월부터 시작한 지역 청소년 예술 인재 양성프로그램인 ‘화요예술클럽’에 참여해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매주 화요일 3시간씩 전통 칠보 기법을 학생들에게 전수해 주고 있다. 현직 작가에게 직접 배울 수 있는 드문 기회라 학생들의 반응도 뜨겁다. 이 학교 금속공예과 3학년 최고은 양(17)은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칠보를 전문가에게 배울 수 있어 흥미롭다”며 “금속공예가가 되고 싶었는데 이번에 칠보를 배우면서 확실하게 결심하게 됐다”고 말했다.
○ 창작 공간 혜택 입은 작가들의 재능 기부
같은 시간 이 학교 6층 금속 세공실에서는 금속공예수업이 한창이었다. 서 씨처럼 신당창작아케이드에서 활동하는 금속공예가 조수정 씨(40·여)가 ‘황학여지도’란 제목으로 수업했다. 학생들이 황학동을 구석구석 탐방하며 얻은 오래된 레코드판 자개 천막 등이 이 수업의 재료였다. 이런 재료로 장신구를 만들어 잊혀져 가는 황학동의 전통 이미지를 살려보자는 취지의 수업이다.
이처럼 서울시가 2009년 10월 개관한 신당창작아케이드가 젊은 예술가들의 창작활동 공간을 넘어 지역문화활성화의 거점으로 거듭나고 있다. 시의 지원을 받으며 활동하는 예술가들이 보답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저마다의 재능을 기부하고 있다.
예술가들은 학생을 가르치는 것 외에 시민을 대상으로 한 무료 공예 체험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매주 토요일 입주 예술가들이 직접 강사로 나서 전통자수 북아트 도자기 섬유 종이 금속공예를 가르쳐 준다. 가족과 함께 각종 공예기법을 배우고 만든 작품을 가져갈 수도 있어 상반기까지 1만여 명이 참여할 정도로 호응을 얻고 있다. 아케이드를 돌며 예술가들의 작업 모습과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건 덤이다. 예술가들이 만든 공예품을 판매하는 가게도 있다.
○ 방치 점포가 재능기부의 씨앗
입주 예술가들은 출입구 골목 벽화작업 같은 공공미술 프로젝트는 물론 지하상가에 같이 입주해 있는 이웃 상가의 차림표나 간판 꾸미기에도 재능을 기부하고 있다. 김진호 신당창작아케이드 매니저(38)는 “아케이드가 생길 때만 해도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던 상인들이 이곳을 찾는 시민과 관광객이 늘자 장사도 예전보다 나아지고 있다며 반기고 있다”고 말했다.
신당창작아케이드는 임대가 안 돼 흉물스럽게 방치됐던 신당지하상가 점포 40여 개를 서울시가 개별 작업실로 리모델링해 예술가들에게 제공한 공간이다. 현재 예술가 35명이 입주해 있다. 시는 월 1만5000∼4만 원 정도의 임대료만 받으며 이들의 창작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입주예술가들이 만든 공예품의 판로도 함께 개척하고 있다. 지난달 파리에서 열린 세계 최대 홈 인테리어 전시회 ‘메종 & 오브제’에서는 신당창작아케이드 입주 예술가 이성진 씨(31)와 이민혜 씨(27·여)가 만든 ‘스마트폰 때밀이’ 등 아트상품 5종 15억 원어치가 수출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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