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삼성 ‘중동 中·高 경영’ 17년만에 손 뗀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0월 21일 03시 00분


“선발권 없는 자율고에 실망… 투자 비해 효과 없어” 분석
年34억 지원 끊겨… 새 인수자 없을땐 일반고 전환 가능성

삼성이 서울 강남구 일원동 중동중과 중동고에 대한 지원을 끊겠다고 통보한 사실이 확인됐다.

지난해부터 자율형 사립고로 바뀐 중동고 교사들은 삼성의 지원 없이는 일반고로 다시 돌아가야 할지 모른다며 불안해하는 분위기다.

20일 중동고에 따르면 삼성은 학교법인 중동학원의 경영에서 물러나겠다고 지난주에 통보했다. 이에 따라 중동학원의 이사장(삼성전자 이윤우 부회장)과 이사(김수근 삼성물산 부사장)도 연말에 물러나기로 했다. 삼성은 1995년 고(故) 이병철 회장의 유지를 따라 중동학원을 경영했다. 또 이 회장이 졸업한 중동고에 지금까지 800억 원 정도를 지원했다.

삼성 관계자는 “삼성이 지원한 이후 중동고가 명문이 됐고, 이제 재정도 자립할 수 있을 정도가 됐다고 본다. 일방적으로 중단하는 게 아니라 양자 간에 합의가 됐다”며 “자율고 지정기간(2014년)까지 학교 운영을 위한 필수 비용은 계속 지원한다”고 설명했다.

중동고 관계자는 “법인전입금(연간 3억5600만 원) 외에 삼성이 자율고 지정 기간에 필요한 학생 장학금과 실험실습비 등 약 10억 원은 연말에 일괄 지급하겠다고 했다”고 했다.

문제는 법인전입금 외의 지원이다. 중동고 A 교사는 “전입금과 별도로 삼성이 해마다 투입하던 34억 원 정도가 내년부터 끊기므로 순전히 학생 등록금에 의존해야 한다”며 “하루아침에 교육 사업을 중단할 수 있는 건가 싶어 패닉 상태다”고 말했다. ‘자율고 지정 및 운영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법인이 연간 수업료와 입학금 총액의 5% 이상을 학교에 내야 자율고로 지정받을 수 있다.

교사에게 지급되던 수당이나 해외 연수는 내년부터 중단된다. 등록금이 올라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대개 자율고는 일반고보다 등록금이 3배 비싸지만 중동고는 삼성의 지원 덕에 2.5배 정도(약 390만 원)를 받았다.

중동고는 동창회를 중심으로 새로운 인수자를 찾는 중이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3년 뒤 일반고로 전환할 가능성도 있다.

이에 대해 교육계에서는 “삼성이 말뿐인 자율고에 실망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A 교사는 “한국 최고의 학교를 만들어보려고 많은 돈을 투입했는데 자율권이 없어 효과가 없다는 데 실망한 것 같다”고 말했다. 내신 50% 이내 학생을 추첨으로 뽑는 등 선발권이 없고 교육과정도 사실상 자율권이 없기 때문이라는 뜻이다.

또 다른 관계자도 “삼성이 명분상으로는 회사 경영에 전념하겠다고 했지만, 사실은 학생 선발권이 있는 하나고(자립형 사립고)는 임직원 자녀가 20%인데 중동고는 선발권이 없는 등 투자에 비해 효과가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했다.

한 교육계 관계자는 “고교 다양화 차원에서 정부가 자율고를 추진했지만 서울 등 진보교육감이 있는 교육청에서 자율고를 귀족학교 등 부정적으로 인식해 기업 이미지에 악영향을 준다고 생각한 게 아니냐”고 지적했다.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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