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인촌 김성수 선생(1891∼1955)의 일제강점기 행적 일부를 친일반민족 행위로 결정한 것은 잘못됐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부장판사 조일영)는 20일 인촌기념회 등이 행정안전부 장관을 상대로 낸 친일반민족행위결정 취소 소송에서 “일본제국주의의 내선융화 또는 황민화 운동을 적극적으로 주도해 일본제국주의 식민통치에 인촌이 적극 협력했다고 결정한 부분을 취소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친일반민족 행위로 결정하기 위해서는 친일 행위의 내용과 방법이 상당한 정도로 입증되어야 한다”며 “인촌이 청장년층을 훈련하고 황국 정신을 높인다는 흥아 보국단의 준비위원 60인 가운데 1인으로 선정된 것은 맞지만 위 단체가 실제로 어떤 활동을 했으며 인촌이 어느 정도의 역할을 했는지에 대해 자료 없이 내려진 친일행위 처분은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또 라디오 강연 등을 한 것 등을 토대로 일본제국주의 내선융화 운동을 적극 주도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판단했다.
다만 재판부는 인촌이 학병이나 지원병 등을 선전하는 좌담회에 참석하거나 격려하는 글을 매일신보 등에 기고한 것을 두고 내려진 친일 결정에 대해서는 “한민족의 뿌리와 생존 자체가 위협받던 식민지배 아래에서 당시 인촌의 내적 의사가 어땠냐는 것과는 별도로 행위 자체는 친일 행위로 평가받을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이어 “문제가 되고 있는 인촌의 친일 행위는 동아일보가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1위를 한 손기정 선수의 일장기를 말소해 조선총독부로부터 무기정간 처분을 받았다가 복간된 직후인 1937년 7월경부터 나타난다”며 “당시 중일전쟁 등이 발발한 격동기에 유력 기업인이자 교육자로서 기업과 학교를 정상적으로 존속시키기 위해 협력해야 했던 부분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에 앞서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는 2009년 11월 인촌에 대해 친일행위를 했다고 결정했다. 이에 인촌기념회와 후손은 “친일 행위 결정의 주요 근거로 쓰인 매일신보와 경성일보는 일제 말기 조선총독부의 기관지였으며 대부분이 과장되고 날조된 것”이라며 “일제에 의해 강제로 동원된 것일 뿐 황국화 운동을 적극 주도하지 않았다”며 지난해 1월 소송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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