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북혐의 기장 “취미삼아 한 일”… 본보기자에 “선동 목적 없다… 억울” 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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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0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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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 기장 김모 씨가 60여 건의 친북 게시물을 올린 웹사이트 ‘자유에너지개발자그룹’ 초기화면. 경찰은 “김 씨가 과학 관련 사이트로 위장해 종북활동을 해왔다”고 밝혔다.
대한항공 기장 김모 씨가 60여 건의 친북 게시물을 올린 웹사이트 ‘자유에너지개발자그룹’ 초기화면. 경찰은 “김 씨가 과학 관련 사이트로 위장해 종북활동을 해왔다”고 밝혔다.
“북한을 제대로 알아야 협상도 하고 화해도 할 것 아닙니까. 개인적 호기심에서 북한 사상을 공부한 것뿐인데 왜 간첩 취급하는 겁니까.”

자신의 홈페이지에 북한 찬양 게시물 60여 건을 올리는 등 종북(從北) 활동을 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는 대한항공 기장 김모 씨(44)는 20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억울함을 토로했다. 김 씨는 경찰이 자택을 압수수색한 18일 대한항공으로부터 대기발령 통보를 받았다.

김 씨는 “대부분의 교통사고가 쌍방과실이듯 남한 체제도 나름의 모순이 있고 공산주의도 나름의 장점이 있지 않느냐”며 “김정일 위원장 생일 행사 때 전 인민이 동원되는 모습 등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많지만 그들의 문화와 사상을 이해해야 통일 후를 대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북한의 이념이나 대외 활동을 보고 감정적으로 ‘멋있다’ ‘박력 있다’ 이렇게 느낄 수 있는 것 아니냐”며 “북한 관련 사이트에서 좋은 내용이 담긴 글을 보면 취미 삼아 긁어와 올린 것일 뿐 누구를 선동하려는 목적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김 씨는 자신이 운영하는 사이트 ‘자유에너지개발자그룹’(www.sicntoy.com) 방문자가 하루 평균 10명에 불과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과학 사이트로 위장해 종북 활동을 했다고 하는데 10년 전 이 사이트를 만든 건 에너지가 끊임없이 나오는 무한동력이나 대체에너지 분야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방문자도 적고 조종사일로 바쁘기도 해서 (사이트 운영에) 신경을 못 썼고 최근 몇 달간은 게시물을 거의 올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 씨가 이 사이트에 올린 게시물에는 ‘두 개의 전쟁전략’이나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 노작’ 등 일반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이적표현물이 다수 포함돼 있다. 특히 수사당국도 구하기 힘든 북한원전을 600여 건이나 볼 수 있게 해놓은 점 때문에 경찰은 단순한 호기심 차원을 넘은 체제위협 행위로 보고 있다.

하지만 김 씨는 “다른 사이트에 올라온 글을 퍼온 것이고, 북한의 이념이나 사상과 관련이 없는 게시물도 많았다”며 “‘조선의 딸들’처럼 순결하고 전통적인 여성상을 표현한 시 등 문학적인 차원에서 관심이 있어 올린 글도 있다”고 말했다.

김 씨는 특히 해당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친북 관련 문건과 동영상에 대해 “유튜브나 진보성향 매체 등 인터넷에 널려 있어 초등학생들도 얼마든지 볼 수 있는 내용”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경찰이 월북 가능성을 거론한 것에 대해서도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김 씨는 “북한에 가고 싶으면 통일부에 정식으로 신청해서 가지, 1억 원이 넘는 연봉, 사랑하는 가족들을 버려두고 왜 그런 비정상적인 방법을 쓰겠느냐”고 반박했다.

경찰에 따르면 당국이 18일 김 씨의 집을 압수수색할 당시 김 씨는 눈시울을 붉히며 당황했다고 한다. 김 씨는 “평생 배운 거라곤 비행기 운전뿐인데 회사에서 해고당하면 저한테 의지해 사는 부모님과 초등학생인 두 딸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해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김 씨는 “우리나라는 생각의 자유를 인정하는 민주주의국가라고 믿는다”며 “내가 정말 북한추종자인지 아닌지는 법정에서 가려질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경찰은 김 씨가 초등학교 동창 등 지인에게 e메일로 북한 관련 자료를 보내면서 “이걸 보관하고 있으면 국가보안법에 저촉될 수 있으니 읽고나서 삭제하라”고 권유하는 등 친북활동을 감추려 한 정황까지 확인돼 사법처리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경찰관계자는 “단순히 친북 게시물 몇 건 올렸다고 섣불리 수사에 나섰다간 도리어 ‘공안정국을 조성한다’는 역풍이 불기 때문에 신중하게 수사에 임하고 있다”며 “김 씨의 경우 장기간 지속적으로 친북 게시물을 올리고 관련 자료를 주변에 전파한 혐의가 드러나 취미로 북한 공부를 했다는 해명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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