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 A 씨는 지난 여름방학 동안 중1 딸의 부족한 수학실력을 보충하기 위해 과외선생님을 찾았다. A 씨는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며 왕래하던 학부모 B 씨가 “우리 아들 과외선생님이 새로 바뀌었는데 실력이 좋은 것 같다. 아들도 공부에 좀 더 재미를 붙인 것 같다”고 말했던 기억이 났다. A 씨는 B 씨에게 과외선생님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의외의 반응이 돌아왔다. B 씨는 “선생님 연락처를 내가 바로 가르쳐 줄 수는 없다. 선생님의 동의를 먼저 구해야 한다”고 말하는 게 아닌가. 몇 주가 지나도 B 씨로부터 연락이 없자 선생님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재차 부탁한 A 씨. 하지만 이번엔 B 씨가 “이젠 과외를 안 한다”며 번호를 끝내 가르쳐주지 않는 것이었다. B 씨의 아들이 계속 해당 선생님에게 과외를 받고 있음을 뻔히 알았던 A 씨는 섭섭하면서도 황당한 마음이 교차했다. 고1인 B 씨의 아들은 지금 중1인 자신의 딸과는 결코 경쟁상대가 되지 않는데도 극구 연락처를 가르쳐주지 않다니….
그간 음성적으로 행해지던 개인과외가 최근 더욱 수면 밑으로 내려가며 ‘비밀화’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외국어고 입시가 신입생 전원을 자기주도학습 전형으로 선발하고 대입에서도 입학사정관전형을 통해 뽑는 신입생 수가 늘어나는 등 최근 자기주도 학습이 입시의 화두로 떠오르자, 사설학원보다 한층 ‘사교육’ 이미지가 강한 개인과외를 받았거나 받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숨기려는 학생과 학부모가 늘고 있는 것.
사교육을 줄이기 위해 도입된 학원불법운영 신고포상금제인 일명 ‘학파라치’도 과외를 ‘특급비밀’로 만드는 또 다른 원인. 주위 사람 중 누가 학파라치로 돌변해 자신과 아이를 신고할지 모르기 때문. 아이의 친구나 평소 친하게 지내던 학부모가 경쟁심에서 신고할 수도 있다.
고1 자녀를 과외 시키고 있는 학부모 C 씨는 “우리 아이는 요즘 들어 친한 친구에게조차 과외 받는다는 사실을 숨긴다”면서 “과외 수업 때 쓰는 문제집이나 유인물은 학교에 가져가지 않고 집에서만 공부한다”고 귀띔했다. C 씨는 평소 자주 나가던 어머니 모임도 요즘은 잘 참석하지 않는다. 정보공유보다는 ‘보안’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중2 자녀를 둔 학부모 D 씨도 아들이 과외를 받는 사실이 알려질까 노심초사다. 아들은 친구 4명과 함께 수학 그룹과외를 받고 있다. D 씨는 선생님에게 과외비를 지급하는 방식부터 바꿨다. 계좌이체를 할 경우 ‘증거’가 남으므로 이제부턴 현금으로 지급하기로 한 것이다. D 씨는 “그룹과외를 받기 위해 학생들이 우루루 몰려다니는 모습이 남들 눈에 띌까 걱정”이라며 “요즘은 옆집, 아랫집, 윗집도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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