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후 제주 서귀포시 성산포 해안. 소라를 한가득 담은 망사리를 짊어진 해녀 고송환 씨(65·사진)가 뭍으로 올라왔다. 환갑을 훌쩍 넘겼지만 물질(해산물 채취하는 일)작업의 최고수를 뜻하는 ‘상군’ 해녀답게 이날 소라 22kg를 채취했다.
고 씨는 제주지역 최초의 경선 어촌계장으로 활동하다 21일 임기를 마쳤다. 1997년부터 3회 연속 당선해 12년 동안 어촌계장직을 수행했다. 남자도 힘든 드센 뱃사람들을 통솔했다. 어부와 해녀 260여 명으로 구성된 어촌계를 장기간 여성이 이끈 것은 제주지역에서 이례적이다.
고 씨는 “계원들이 새로운 변화를 절실히 바랐기 때문에 여성이지만 어촌계장이 될 수 있었다”며 “고충이 많았지만 개인적인 욕심을 버리고 계원들의 실제 소득을 높이기 위해 발이 닳도록 뛰어다녔다”고 말했다. 초등 졸업이라는 최종학력에도 불구하고 친화력과 성실함으로 어촌계를 이끌었다.
제주의 해녀들은 대부분 작업과정을 보여주는 것을 꺼린다. 해산물을 강탈당한 과거의 역사가 무의적으로 남아있고, 고되고 힘든 물질 자체에 대한 자부심이 덜하기 때문이다. 이런 해녀들의 닫힌 마음을 고 씨가 먼저 풀어 헤쳤다. 세계자연유산인 성산일출봉을 배경으로 2007년 7월 제주에서 처음 정기적으로 ‘해녀물질공연’을 시작했다. 고 씨는 “물질작업과정을 보여주는 것도 민망한데 무슨 공연이냐는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실보다 득이 많다고 성심성의껏 설득하면서 한 명, 두 명 참여를 이끌어냈다”며 “나중에 해산물 판매로 수익이 많아지자 비아냥거리는 소리는 저절로 사라졌다”고 말했다.
성산포어촌계 해녀물질공연은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독일 중국 사우디아라비아 이스라엘에서도 취재를 했다. 해녀들이 직접 물질하는 과정을 소상히 보여주면서 더욱 화제를 모았다. 2009년 8월에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현장을 방문하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고 씨는 “우리는 학벌 외모 권력 따위 없어도 열심히 일한 만큼 벌 수 있는 직업”이라며 자부심을 비치기도 했다.
고 씨는 “해녀들이 고령화되면서 언젠가 해녀가 현장에서 사라질 수도 있다”며 “더 늦기 전에 세계적으로 찾아보기 힘든 제주의 해녀문화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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