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교보, 대한 등 담합을 주도한 ‘빅3’ 보험사들이 자진신고로 잇달아 과징금을 감면받으면서 ‘자진신고감면(리니언시·Leniency)’ 제도가 담합을 주도해 막대한 이익을 올린 대기업들이 처벌을 받지 않고 빠져나가는 ‘먹튀’의 수단이 되고 있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빅3 보험사들은 개인보험 이율을 담합해 부과받은 과징금 중 2500억 원가량을 면제받은 데 이어 이번에도 변액보험 담합을 자진신고하면서 천문학적인 금액의 과징금을 안 내도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담합을 주도한 기업에 대해서는 과징금 감면 혜택을 제한하는 등 리니언시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리니언시 제도는 담합 행위를 자진해서 신고하면 과징금을 깎아주는 제도. 공정거래위원회는 담합 사실을 가장 먼저 신고한 기업에는 과징금 전액을, 2순위는 50%, 3순위는 30%의 과징금을 각각 감액해 주고 있다.
문제는 과징금 감면 혜택이 담합을 주도한 대기업에 집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2008년부터 올 8월까지 대기업들은 공정위 담합조사 개시 직후 자진신고를 통해 3891억 원의 과징금을 감면받았다. 같은 기간 자진신고를 통한 전체 과징금 감면액 6727억 원의 60%에 이른다. 실제로 2009년 역대 최대 규모의 과징금(6693억 원)이 부과된 액화석유가스(LPG) 담합사건은 담합을 주도한 시장점유율 1위 기업인 SK에너지와 SK가스가 자진신고를 통해 총 2500억 원의 과징금을 감면받았다. 상습적으로 담합에 가담하고도 자진신고를 통해 과징금을 감면받는 대기업도 적지 않다. CJ는 2006년 밀가루와 세제가격 담합, 2007년 설탕 가격 담합으로 적발됐지만 자진신고로 검찰 고발을 면하고 과징금도 감면받았다.
자진신고를 통한 과징금 감면 혜택을 대기업이 누리는 것은 중소기업이 대기업의 보복 위험을 무릅쓰고 대기업 주도의 담합을 자진신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 현실적으로 공정위의 조사 움직임을 사전에 포착해서 변호사들로부터 리니언시 제도를 활용할 것인지 법률적인 조언을 받는 것은 대기업만이 가능하다.
공정위는 담합 적발을 위해서는 리니언시 제도가 꼭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공정위 측은 “은밀하게 이뤄지는 담합의 특성상 내부 고발자가 없으면 적발하기 어렵다”며 “리니언시 도입 후 담합 적발이 크게 늘어난 것에 비춰보면 과징금 감면은 담합 적발과 예방에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대기업에 과징금 감면 혜택이 집중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담합을 주도한 기업은 선진국 사례를 감안해 자진신고를 하더라도 과징금 감면 혜택을 줄여야 한다는 것. 현재 리니언시 제도를 도입한 국가는 모두 40개국. 이 가운데 미국과 독일, 캐나다, 호주는 단독으로 담합을 주도한 기업에 대해서는 1순위로 자진신고를 해도 과징금을 면제해주지 않는다. 또 영국과 일본은 원칙적으로 1순위 자진신고 기업에 대해 과징금을 전액 면제하되 정부의 판단에 따라 혜택을 축소할 수 있게 돼 있다. 신현윤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리니언시 제도가 필요하더라도 담합을 주도한 기업까지 과징금을 전액 면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외국처럼 과징금 면제 혜택을 축소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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