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우리학교 공부스타]서울 진관중 3학년 박시원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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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1월 1일 03시 00분


“‘방과후 수업’서 학습요령 터득… 매일 학습계획표 짜며 열공했어요”

《서울 진관중 3학년 박시원 양(15)은 아기 때부터 어른들을 당혹스럽게 만들기 일쑤였다. 주위에서 아무리 “까꿍”하며 웃겨도 그저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하는 ‘무표정’ 아기였기 때문이다. 초등학생 때도 웃음이 증발된 무뚝뚝한 성격은 변하지 않았다. 이러던 박 양이 요새 확 바뀌었다. 친구들과 수다 떠는 것을 좋아하고 서울 동대문 의류상가로 쇼핑가는 것을 좋아한다. 아이돌 그룹 빅뱅과 리더인 지드래곤을 좋아하고,TV에선 ‘무한도전’과 시트콤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을 깔깔거리며 보는 천생 ‘소녀’다. 친척들로부터는 “애교 많아졌네” “밝아졌네”라는 얘기까지 듣는다. 아니나 다를까, 그에겐 이런 놀라운 변화를 맞게 된 까닭이 있었다.》
서울 진관중 3학년 박시원 양. 공부가 ‘과정’이 아닌 ‘목표’가 된 뒤 성적이 오른 것은 물론이고 성격도 변했다. 박양의 꿈은 검사가 되는 것이다.
서울 진관중 3학년 박시원 양. 공부가 ‘과정’이 아닌 ‘목표’가 된 뒤 성적이 오른 것은 물론이고 성격도 변했다. 박양의 꿈은 검사가 되는 것이다.
초등학교 때 부모님은 승리욕이 유난히 강한 박 양이 학습에 흥미를 가지도록 ‘당근’을 주시곤 했다. 시험성적이 좋으면 갖고 싶어 했던 옷이나 먹고 싶어 했던 음식을 사주면서 확실한 ‘성취동기’를 제공했던 것. 시험에서 100점을 받고 나면 자신의 손에 얹어질 선물에 대한 기대로 가슴이 부풀고는 했다.

“중학생이 되어도 선물을 염두에 두고 공부하는 자세는 달라지지 않았어요. 공부를 ‘찾아서’ 한다기보다는 좋은 성적을 내어 빅뱅의 새 앨범이나 스마트폰을 손에 쥘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던 거죠.”

공부가 ‘목적’이 아닌 ‘과정’이 되다보니 수업 집중도가 떨어졌다. ‘이번에 못하면 다음에 잘하면 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업시간에는 선생님 몰래 친구들과 쪽지를 주고받기도 했고, 중간 기말고사를 앞두지 않으면 공부를 하지 않았다.

시험일이 다가와도 문제집만 한두 권 푸는 것으로 끝났다. 오답노트? 그런 건 생각도 안 했다. ‘시험범위 내 문제를 다 풀었다’는 생각으로도 뿌듯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이 정도 공부하면 초등학교 때는 당연히 높은 점수를 받았건만, 중학생이 되니 목표인 평균 90점에 단 한 번도 닿지 못했기 때문이다. 시험 중에는 ‘어, 이거 어디서 본 문제인데…’라고 생각하다 보면 시험시간이 후딱 지나갔다. 그렇다. 지금까지의 공부방식이 한계를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내가 가진 욕심의 ‘목표’를 바꿔야 했어요.”

박 양을 자극한 사건은 또 있었다. 시험이 끝나면 공부 잘하는 친구들 서너 명이 모여 “너는 몇 점이니?” “나는 몇 등이야”라며 얘기를 나누는 것. 하지만 박 양은 대화에 참여할 수가 없었다.

“자존심이 상했어요. 승리욕이 발동했죠. 나도 3학년이 될 때까진 반드시 저 ‘무리’에 들어가야겠다는 결심을 했어요.”

2학년 1학기 내신시험 평균은 86.2점. 나쁘지 않은 점수였지만 박 양의 마음속에 새겨진 목표는 ‘90점’이었다.

2학년 2학기 때부터 방과후 수업인 ‘꿈을 찾는 자기주도학습’ 반에 들어갔다. 친구 따라 얼떨결에 들어가게 된 반이었지만 ‘자기주도학습 역량 검사’를 받아본 박 양은 스스로를 되돌아볼 만한 검사결과를 통보받았다. 박 양의 학습방법은 ‘시간관리’ ‘학습동기’ ‘심리적 안정감’이 부족하다는 것.

박 양은 자기주도학습반에서 가르쳐주는 학습요령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였다. 매일 공부 시작 전이면 그날의 학습계획표를 짰다. 자꾸만 계획을 세우다 보니 어느새 습관으로 자리 잡았다. 사회 과목은 특히 개념 위주 학습을 하기 위해 개념어들을 도표화해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지도 형태로 만드는 작업에 들어갔다. 하루 동안 풀었던 수학문제 중 두 문제를 골라 오답노트를 쓰듯 전체 풀이과정을 손으로 써내려갔다. 그러다 보니 수학의 공식을 유도하는 등의 서술형 평가에도 대비할 수 있었다.

자기주도학습반에서 내주는 과제가 많다 보니 사설학원 수강과 병행했던 친구들 중 일부가 이 반에서 나가는 일도 생겼다. 하지만 박 양은 방과후 수업으로 승부를 보기로 했다. 이 반에 하도 오래 있다 보니 ‘왕언니’라는 별칭도 얻게 됐다. 공부에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다. 시험이 끝나면 어떤 점수를 받게 될지 기대가 됐다.

3학년 첫 중간고사. 평균 92.5점. 기말고사에서는 94.7점까지 올랐다.

“꿈꿨던 90점을 넘다니, 날아갈 듯한 기분이었어요. 공부를 하면 할수록 ‘내 최고기록을 세워야지’라는 생각이 강해졌어요.”

박 양에게 일어난 변화는 성적뿐만이 아니었다. 성격이 변했다.

“자기주도학습 역량 검사에서 ‘심리적 안정감’ ‘자존감’이 낮게 나온 결과표를 보고 놀랐어요. 결과표는 원 모양으로 표시되는데 원이 보름달처럼 둥글수록 ‘자존감이 높다’는 뜻이었어요. 그런데 제 원은 찌그러져 있었죠. 못생겼던 원도 성적이 점점 오르면서 둥그렇게 변하고 있어요.”

박 양의 포부는 ‘여검사’가 되어 범죄사건 수사를 지휘하는 것이다.

“한번은 법원에서 형사재판을 직접 보았어요. 술에 취한 남자가 생면부지의 여성이 사는 원룸에 침입해 성폭행한 사건을 다루는 재판이었어요. 굉장히 딱딱하고 권위적이리라는 예상과 달리 재판은 마치 생명이 있는 것처럼 역동적이고 흥미로웠어요. 그 순간 제가 꿈에 한 발짝 더 다가간 기분이었지요.”

요즘은 헌법에 관한 서적을 읽고 있다는 박 양. 그가 여검사로 법정에 서있을 그날을 기대해본다.

오승주 기자 cantar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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