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 나의 길]송월주 회고록… 연재를 시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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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1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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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차례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내며 한국 현대 불교사의 산증인으로 불리는 송월주(宋月珠·76) 스님 회고록을 연재한다. 신군부에 의한 10·27 불교 법난(法難)의 비화를 시작으로 김수환 추기경, 강원용 목사, 청담·성철 스님 등 종교인들과 역대 대통령 등 스님이 만난 사람들과의 사연, 50여 년에 걸친 불교계 개혁의 격랑을 담는다.》

“토끼의 뿔과 거북의 털을 구하러 다녔소.”

토각귀모(兎角龜毛), 불교에서 이른바 세상에 있을 수 없는 일을 비유하는 말이다. 7월 회고록 때문에 서울 아차산 기슭의 영화사를 찾았을 때 송월주 스님은 자신의 삶을 이렇게 짧게 옮겼다. 한국 현대 불교사의 산증인으로 불리는 스님은 무엇을 좇은 것인가, 출가 뒤 불제자로 보낸 57년의 세월은 헛된 것이란 말인가.

거칠게 표현하면, 스님 삶의 8할 이상은 적막한 산사가 아니라 왁자지껄한 저잣거리를 닮은 현장에서 쓰였다.

1954년 속리산 법주사에서 금오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스님은 1961년 26세 때 금산사 주지가 됐다. 본사 주지로는 최연소 주지였고, 지금도 바뀌지 않은 기록이다.

스님은 1950∼60년대 비구와 대처승의 대립으로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불교정화운동에 참여한 것을 시작으로 불교사 격랑의 한복판에 줄곧 서 있었다. 정치권력에 의한 불교계 최대 수난인 1980년 10·27 법난(法難) 때에는 종단 행정의 책임자인 총무원장 직을 맡고 있었다. 그날 오전 보안사 서빙고 분실로 강제연행된 스님은 가사와 장삼 대신 푸른 수인복을 입고 23일간 조사를 받은 뒤 원장 직에서 물러났다. 조계종 종권을 둘러싼 갈등 끝에 폭력 사태가 벌어져 사회적 지탄을 받았던 1994, 98년 종단 사태 때에는 갈등의 한 축이기도 했다.

송월주 스님이 회주로 있는 전북 김제시 금산사의 만월당에서 57년 불제자로 살아온 삶의 기억들을 더듬고 있다. 김제=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송월주 스님이 회주로 있는 전북 김제시 금산사의 만월당에서 57년 불제자로 살아온 삶의 기억들을 더듬고 있다. 김제=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조선왕조는 숭유억불(崇儒抑佛)을 국가 근간의 하나로 여겼다. 이에 따라 수행을 위주로 하는 이판승(理判僧)과 사찰 운영을 담당하는 사판승(事判僧)으로 스님들을 낮추어 부르기도 했다. 광복 이후 식민지 불교의 잔재를 청산하기 위해 청담, 성철, 금오 스님 등 고승들이 정화운동에 참여하면서 ‘이판사판’의 경계는 흐려졌다.

불교 정화운동이 한창이던 시기에 출가한 송월주 스님은 이른바 사판의 세계에서 정점에 올랐다.

그러나 그것은 끝이 아니었다. 1998년 총무원장 선거에서 3선 여부를 둘러싼 시비 끝에 후보를 사퇴한 스님은 자신의 표현에 따르면 ‘깨달음의 사회화’에 나섰다. 수행과 불교계 개혁의 현장 속에서 얻은 깨달음을 이웃, 사회와 나누기 위한 것이었다.

2000년대 들어 스님은 이제 고인이 된 김수환 추기경, 강원용 목사와 함께 종교인의 화합과 사회적 나눔 활동의 상징이 됐다. 160cm가 조금 넘는 단구에 둥그런 테 안경을 낀 스님은 한때 80여 개가 넘는 직함을 가졌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공동대표와 공명선거실천시민연합 상임 공동대표, 실업극복국민운동본부 공동위원장을 지냈고 2004년부터 지구촌공생회 대표로 활동의 영역을 지구촌으로 넓혔다.

스님의 삶을 생생하게 담아낼 수 있는 또 다른 그릇은 ‘사람’이다. 은사인 금오 스님을 비롯해 불교계의 큰 봉우리였던 탄허, 청담, 성철 스님과 깊은 인연을 맺었다. 서옹, 서암, 월하, 혜암 스님 등 역대 종정스님, 고산, 법장, 정대, 지관 스님 등 총무원장들과는 불교개혁 과정에서 같은 배를 타거나 불가피하게 갈등을 벌였다. 스님의 상좌인 도법 스님을 비롯해 청화, 지선, 수경, 명진 스님 등 1990년대 들어 부상한 후배 스님그룹들과의 만남도 있었다.

스님의 행보는 불교계뿐 아니라 10여 차례 이상 만난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 등 최고 권력자를 비롯해 시인 고은, 소설가 조정래, 국악인 안숙선 씨 등 이념과 분야를 뛰어넘었다.

“불법은 세간(世間·속세)에 있고 깨달음은 세간을 떠나 있지 않으니, 세간을 떠나 깨달음을 구하면 그것은 마치 토끼 뿔을 구함과 같다.” 스님이 즐겨 쓰는 법어다. 남들은 깨달음을 찾아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지만 세상에서 토끼의 뿔을 찾아다닌 스님의 변이다. 후회도 없다고 했다. 한 번도 자신의 키가 작다고 느껴본 적이 없다는 스님은 세상 속에서 사람들과 부대끼며 자신의 법을 구해왔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 송월주 스님 행장(금산사·영화사 회주)

△1935년 전북 정읍 출생
△1954년 법주사에서 금오 스님 계사로 사미계 수지
△1956년 화엄사에서 금오 스님 계사로 비구계 수지
△1961∼71년 금산사 주지
△1966∼81년 대한불교 조계종 2∼7대 중앙종회의원
△1968∼74년 학교법인 동국학원(동국대) 이사
△1978년 조계종 제5대 중앙종회의장
△1980년 4∼11월 조계종 제17대 총무원장
△1988년 10·27법난 진상규명추진위원회 대표
△1990∼95년 공명선거실천시민연합 상임공동대표
△1994∼98년 조계종 제28대 총무원장
△1998∼2003년 실업극복국민운동본부 공동위원장
△2004년∼ 지구촌공생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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