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에 있는 한 노인정에 들어서던 김금순 씨(69)가 자신의 LG전자 ‘옵티머스 빅’ 스마트폰 화면을 바라보며 빙긋 웃었다. 김 씨는 요즘 일곱 살 난 외손자 장주원 군과 스마트폰용 메신저 ‘카카오톡’으로 대화를 나누는 재미에 산다. “매일 아침 일어나면 카카오톡 메시지부터 확인한다”는 그는 “손자 녀석 말고도 카카오톡으로 대화할 친구가 많아 노인정 친구들과도 관계가 더 돈독해졌다”며 웃었다.
스마트폰은 더는 젊은이의 전유물이 아니다. 국내 60세 이상 스마트폰 가입자가 올해 3분기 들어 100만 명을 넘어섰다. 전체 스마트폰 가입자 중 60대 이상의 비중은 1년 전 4%에서 지금은 6.5%로 늘었다. SK텔레콤은 이런 흐름을 활용하기 위해 1일 ‘노인전용 스마트폰 요금제’를 선보이기도 했다.
○ 노인, 정보기술(IT) 세상으로 나오다
동아일보가 만난 실버 스마트족은 스마트폰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덕에 삶의 무료함을 잊었다고 입을 모았다. 김 씨는 “예전엔 버스를 타면 졸기 바빴는데 이제는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 애플리케이션(앱)을 켜 놓친 드라마를 본다”며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통해 내가 요즘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사는지 적극적으로 알릴 수 있는 점도 만족스럽다”고 했다.
김광문 씨(62)는 무료 인터넷 통화 앱인 ‘스카이프’ 예찬론자다. 그는 요즘 아는 사람을 만날 때면 무료 통화 앱을 내려받으라고 말한다. 김 씨는 “돈 한 푼 안 들이고 통화를 할 수 있으니 마땅한 벌이가 없는 노인들에겐 고마운 기능”이라고 했다. 카카오톡도 김 씨가 많이 사용하는 앱 중 하나. 그의 카카오톡 메신저에는 가족과 지인 52명이 친구로 등록돼 있다. 김 씨는 매일 아침마다 장가간 큰아들과 회사일로 대구에 사는 작은아들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를 날린다. 평생 무뚝뚝한 아버지였지만 글로 보내는 메시지여서 그런지 하트와 윙크 등 애정이 가득 담긴 이모티콘도 자유자재로 사용한다.
“얼마 전에는 큰애가 새로 산 집 사진을 찍어 카카오톡으로 보내주더라고요. 나이가 들수록 외로움을 많이 탄다던데 스마트폰 덕인지 아직은 잘 모르겠네요.” ○ 스마트폰은 자아실현의 도구
20년간 인천 남동구 구월동에서 구멍가게를 운영해 온 오장열 씨(66). 그는 자신의 40, 50대를 4평 남짓한 가게에 모두 바쳤다. 좁은 공간에 갇혀 매일 똑같은 생활을 반복하다 보니 마치 식물인간이 된 기분이었다. 그랬던 그가 최근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접한 이후 웃는 날이 늘었다. 그는 “심심하고 답답해 술만 마셨는데 요즘엔 스마트폰 갖고 노느라 바쁘다”고 했다.
‘스마트 라이프’는 그에게 짭짤한 용돈벌이도 됐다. 오 씨는 매일 아침마다 온라인 중고거래 사이트에 접속해 싸고 좋은 제품을 산 뒤 이를 되판다. 어느덧 중고거래 베테랑이 된 그는 한 달에 150만 원어치씩 사고팔아 용돈으로 쓴다. 그는 “스마트폰으로 수시로 중고거래 사이트에 접속해 매물을 확인하는 게 비결”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생필품과 식료품도 스마트폰용 G마켓이나 11번가 앱을 이용하면 주변 대형마트보다 저렴하게 살 수 있다”고도 했다.
‘얼리어답터’답게 그는 2007년부터 한국정보화진흥원의 ‘어르신IT봉사단’으로 선정돼 매주 월요일 성북구 하월곡동 밤골경로당 복지관 인터넷교육장에서 사진 편집 프로그램 사용법과 인터넷 강의를 해오고 있다. 그에게 컴퓨터 강의를 듣고 있는 김상권 씨(70)는 “통신사나 카드회사들이 명세서를 e메일로 받으면 혜택을 준다기에 컴맹 탈출을 결심했다”며 “늦은 나이에 뭔가를 배운다는 게 쑥스럽기도 하지만 시대에 뒤처지지 않게 살고 싶다”고 했다.
윤성이 경희대 정경대 교수는 “스마트폰은 그동안 세대 간 소통을 어렵게 만들었던 정보 격차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유용한 메커니즘”이라며 “최근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SNS의 위력이 확인됐듯 노인들도 스마트 기기를 통해 더 영향력 있는 정치세력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 OECD가 주목하는 한국의 노인들
한국의 ‘실버 스마트족’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연구 대상까지 되고 있다. OECD는 프랑스 파리 본부에서 근무하는 과학기술산업국 수석 정책분석가인 엘레트라 롱쉬 박사를 지난달 26일 한국에 파견했다. 한국을 ‘실버 스마트’ 분야의 세계적 모범사례로 보고 그 비결을 공부하기 위해서다.
OECD는 실버 스마트족이 늘면 사회 전반의 복지비용을 아낄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롱쉬 박사는 3일 동아일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노인들이 스마트 기기로 서로의 일상적 경험과 정보를 나눔으로써 사회적 고립감을 덜 느끼게 되면 정신 건강이 좋아지고 필요한 정보를 제때 습득할 수 있다”며 “그만큼 국가 전체가 노인층에 져야 하는 부담도 줄어든다”고 설명했다. 그는 “고령화 문제를 IT로 해결하려 하는 선진국으로서는 상당수 노인이 스마트폰을 다루는 한국의 현실이 교과서처럼 보인다”고 덧붙였다. OECD는 노인들이 취미나 건강, 의학 등 자신들의 관심사와 관련된 정보를 IT기기로 스스로 찾아내 공유할 때 노인복지 예산이 얼마나 절감되는지를 한국의 사례를 통해 연구하고 있다.
특히 OECD는 한국 특유의 끈끈한 가족적 유대가 실버 스마트족 확산에 크게 기여했다고 보고 있다. 롱쉬 박사는 “한국에서 스마트 기기를 쓰는 노인이 느는 건 단순한 마케팅의 결과가 아니다”라며 “세대 간 결속력이 강한 한국 고유의 문화 덕분인지 젊은 세대가 노인 세대의 IT화에 자극을 주고 있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고 말했다.
고현국 기자 mck@donga.com 주애진 기자 jaj@donga.com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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