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사람은 커피를 마실 수 없습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1월 4일 06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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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잔에서 발견된 혈흔은 피해자의 것입니다.

이미 숨진 피해자가 어떻게 커피를 마실 수 있을까요?"

지난달 26일 살인 혐의로 구속 기소된 홍모(50)씨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에서 검찰 측은 피해자의 피가 묻어 있는 커피 잔이 주방 싱크대 안에 놓여 있는 이유를 설명하며 피고인에게 일침을 가했다.

대전지방법원 제316호 법정에 배석한 배심원단은 검사의 한 마디에 숨을 죽였다.

경찰에서 홍 씨는 '이날 피해자에게 커피를 타 달라고 한 것은 맞다'는 진술을 한 터였다.

검찰은 "홍 씨가 장갑을 낀 채 피해자의 혈흔이 묻어 있는 손으로 컵을 옮겨 놓지 않았다면 컵이 싱크대 안에서 발견될 리가 없다"고 주장했다.

피해자가 피를 흘리면서 커피잔을 싱크대에 가져다 놓을 수는 없다는 설명이었다.

지난달 24일부터 3일간 진행된 홍 씨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에서는 검찰 측과 변호인 측의 날 선 공방이 이어졌다.

범행에 쓰인 흉기도 발견되지 않았고 현장 목격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변호인 측은 명백한 증거 없이 정황만으로 혐의를 입증할 수는 없다는 주장을 펼쳤고, 검찰 측은 압수물·현장 족적·피해자 자택 주변 폐쇄회로(CC)TV에 찍힌 피고인의 행적 등을 토대로 이에 맞섰다.

결국, 법원은 수사기관의 손을 들어줬다.

대전지법 제11형사부(김동아 부장판사)는 4일 지인을 흉기로 살해한 혐의(살인 등)로 구속 기소된 홍씨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에서 징역 18년을 선고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범행 직후 피고인 행적, CCTV 분석 결과 등 객관적 자료만으로는 공소 사실을 인정하기 어렵다"면서 "하지만, 당시 피고인이 피해자를 만난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피고인도 보지 못한 '제3자'가 범행을 저질렀다고 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피고인이 범행을 부인하면서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변명으로 일관해 뉘우치지 않는 태도를 보인 점, 유족들에게 심한 고통을 가중하고 있다는 점 등을 종합해 형량을 정했다"고 했다.

참여재판의 배심원 9명 중 3명이 무죄 의견을 냈을 정도로 양쪽 의견은 팽팽했다.

양형에 대해서는 9명 중 징역 15년의 의견을 낸 배심원이 4명으로 가장 많았고, 징역 13년과 8년이 각각 2명이었다. 나머지 1명은 무기징역 의견을 냈다.

이 사건을 담당한 서부경찰서 정진용 경사는 "앞으로 형사 인생에서 이런 용의자를 또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운을 뗐다.

4개월 넘게 가족도 생각할 겨를 없이 이 사건에 매달렸다는 정 경사는 "모든 증거와 정황이 한 사람을 가리키고 있었지만, 범행에 쓰인 흉기와 목격자가 없어 수사가 쉽지 않았다"며 "100명의 살인 용의자를 붙잡는 것보다 1명의 무고한 시민을 만들지 않아야 하는 게 수사관의 책무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참여재판에서) 배심원 9명 중 3명이나 무죄 의견을 밝힌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며 "이번 경험을 통해 용의자의 인권에 대해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고 덧붙였다.

홍 씨는 지난 6월14일 서구 괴정동 A(59·여)씨의 자택에서 A씨를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뒤 현금 200여만원이 들어 있는 가방을 훔쳐 달아난 혐의로 기소됐다.

디지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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