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시위에 많은 시민이 동참한 건 “미국산 쇠고기를 먹으면 광우병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불안감이 가장 큰 이유였다. 당시 시위대 사이에선 미국산 소를 이용해 만든 화장품이나 기저귀만 써도 광우병에 감염되고, 미국에선 수십만 명의 인간 광우병 환자가 있다는 등의 괴담이 사실로 둔갑해 퍼져 나갔다. 괴담들은 이후 모두 허위로 판명 났지만 당시 정부는 여론의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미국과 재협상을 했다. 3년이 지난 올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반대 움직임은 그 당시와 비슷한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다. ○ 건강 문제로 의제 단순화
2008년 광우병 시위의 키워드 중 하나는 ‘뇌송송 구멍탁’이었다. 미국산 쇠고기를 먹으면 인간 광우병에 걸려 끔찍하게 죽어간다는 것이었다. 이번에도 한미 FTA 반대론자들은 ‘건강’ 문제를 파고들고 있다. FTA가 통과되면 의료민영화로 맹장수술비가 900만 원으로 오르는 등 병원비가 폭등하고 복제약 사용이 불가능해 한 달에 100만 원 가까운 약값을 부담해야 한다는 괴담을 만들어낸 것이다. 반정부·반미 정서를 활용하는 것도 비슷하다. 2008년 광우병 시위를 주도한 단체는 ‘2MB탄핵연대’ 등 반정부 단체들로 쇠고기 수입 문제를 반미 이슈로 활용해 반정부 세력을 결집시켰다. 이번 한미 FTA 반대 움직임도 ‘이명박 심판을 위한 범국민운동본부’ 등 반정부 단체들이 괴담을 주도적으로 전파하고 있다.
사회문제에 적극적인 연예인인 ‘소셜테이너’들이 논란의 촉매역할을 하는 것도 비슷하다. 2008년 여배우 김민선(김규리로 개명) 씨는 자신의 미니홈피에 “광우병 소를 먹느니 청산가리를 입 안에 털어넣겠다”는 글을 남겨 논란의 불을 지폈다. 올해는 소설가 이외수 씨가 트위터에 “(한미 FTA로) 너무 많은 것을 잃게 된다”고 했고 소설가 공지영 씨 등이 이를 퍼 나르면서 반대여론을 키웠다.
여론의 흐름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정부의 태도도 반복되고 있다. 2008년 정부는 ‘명박산성’이라는 비아냥을 낳을 정도로 대국민 소통에 미흡해 반정부 여론이 확산되는 것을 바라만 봤다. 이번에도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적극적으로 사실을 홍보해 괴담을 잠재우기보다는 괴담 유포의 진원지로 꼽히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대한 단속으로 대응하고 있다. ○ 광우병 땐 서울광장, FTA는 SNS로
차이점도 눈에 띈다. 2008년 광우병 시위 땐 다양한 연령과 계층의 시민이 참여했지만 이번에는 20, 30대 젊은 여성들이 반대 여론을 주도하는 것으로 경찰은 분석하고 있다. 경찰은 온라인상에 퍼지는 한미 FTA 반대 여론을 주시하기 위해 20, 30대 여성들의 온라인 미용 카페인 소울 드레서(회원 수 16만 명), 화장발(34만 명), 쌍코(10만 명) 등 3곳을 집중 관리하고 있다. 경찰은 이들 사이트에서 활동하는 회원 60만 명 사이에서 한미 FTA 괴담이 주로 유통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시위가 온라인을 통해 여론이 증폭되다 MBC PD수첩 보도 등을 통해 불이 붙으면서 한순간에 광장으로 쏟아져 나온 것과 달리 한미 FTA 반대 움직임은 아직 온라인의 이슈에 머물고 있다. 최근 이어지고 있는 한미 FTA 반대 시위 참가인원은 수백 명에서 최대 2000여 명 규모. 다만 최근 SNS를 통한 ‘무한 리트윗(퍼 나르기)’ 등으로 한미 FTA 반대 여론이 확산되는 속도는 2008년보다 훨씬 빠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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