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비리그 대학에 진학했다가 적응하지 못하고 되돌아오는 한국 학생이 44%나 된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학업성취도 국제비교연구(PISA)에서 1∼2위를 하는 한국 학생들이 왜 미국의 명문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돌아왔을까요?
기사는 이유도 설명했습니다. 첫째는 명문대만 고집했을 뿐, 정작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대한 확신이 없어 적극적으로 공부하지 못한다는 점을 들었습니다. 둘째는 학생들이 스스로 찾아서 공부하지 않고, 시키는 대로만 공부하니 외국 학생들을 따라가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토의나 토론 중심의 학습에 적응하지 못한다는 점이었습니다. 한국에서 영재 소리를 듣던 학생이 적응하지 못하고 돌아오는 현실을 기사는 이렇게 전하더군요.
“책을 읽고 토론하는 수업이 있었는데 교수님이 제 이야기를 듣고 나서 그러시더라고요. ‘아니, 그건 45페이지에서 저자가 한 말이잖아. 네 생각을 말해 보라고.’ 영어를 알아듣기도 어렵고 토론하기도 쉽지 않은데 사고를 묻는 질문이 많아 늘 당황스러웠죠.”
저는 서양학교의 수업을 여러 번 참관했습니다. 수업에 들어가기 전에 관련 자료를 충분히 읽고 생각하도록 주문한다고 합니다. 충분히 준비한 뒤에는 수업 시간의 토론을 통해 내용을 다듬어 비판적인 사고력을 키우게 합니다.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토의나 토론 교육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아 참, 토의와 토론이 어떻게 다른지부터 말해야겠네요. 토의는 의견을 모으는 방법, 토론은 논리적인 말하기를 통해 상대방을 설득하는 일을 말합니다.
1. 가족이 함께하는 날 만들기
어린 자녀를 둔 가정에서는 사회적인 이슈나 학문적인 토의나 토론을 하기 전에 가정에서부터 자신의 생각을 편하게 말하도록 지도해야 합니다. 부모와 자녀의 대화도 다른 교육과 마찬가지로 습관이 돼야 합니다. 가족이 함께하는 날을 통해 자녀가 자기 생각을 편안하게 말하는 식으로 시작하세요.
가족이 함께하는 날은 어떻게 만드냐고요? 일주일에 한 번씩 가족이 함께 집안일을 하면 어떨까요. 식사를 같이 준비하거나 여행을 같이 계획하면? 처음에는 엄마와 아빠가 주도하고 자녀를 참여시켰다가 익숙해지면 자녀가 좀 더 주도적으로 하면 됩니다. 가족이 식사를 같이 준비하기로 했다면 식단을 짜고 장을 보고 요리를 하고 차려 먹는 일까지 함께 하는 겁니다. 이렇게 일을 나누면 어린 자녀도 다른 가족이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 요리는 달콤하게 할지 새콤하게 할지, 역할은 어떻게 나눌지 생각하고 의견을 말하게 됩니다. 가족이 함께하는 토의 또는 토론의 시작인 셈이죠.
식사를 같이 준비했으니 먹으면서 할 이야기도 많아집니다. 서로 잘한 점을 칭찬하고 다음에 더 잘하고 싶은 점을 이야기할 수 있겠지요. 자꾸 하다 보면 할 이야기가 더 늘어납니다. 우리 집 요리의 특징, 다음 가족의 날에 먹을 요리…. 가족이 함께 의견을 말하는 분위기에서 자라는 자녀는 학교에서 어떤 문제가 생겨도 두려워하지 않고 해결하는 힘을 기를 수 있습니다.
2. 그림책 읽고 짧은 토의 토론 하기
다음은 가족이 함께하는 독서입니다. 처음 시작할 때에는 누구나 다 아는, 쉬운 그림동화 한 권을 같이 읽습니다. 미리 읽을 시간이 없다면 가족 중 한 사람이 소리 내어 읽고 다른 사람이 들어도 됩니다. 그런 뒤에 토의나 토론을 하는 겁니다.
①활동 1: 책의 내용 알기=토의나 토론에 가장 중요한 배경지식을 알기 위해 책의 내용을 파악해야 합니다.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해보세요.
②활동 2: 소재 찾기=함께 읽은 책의 내용에서 토의나 토론을 할 소재 또는 주제를 찾습니다. 아이디어를 모으는 데는 브레인스토밍이 좋습니다. 다음과 같은 원칙을 알려주세요.
③활동 3: 정한 주제로 토론하기=찬성과 반대 입장을 각각 정하세요. 토론은 논리적인 말하기이므로 어떤 주장이든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를 찾아야 합니다. 제가 지도했던 학생들은 토론을 즐거워했습니다. 언젠가는 심청이가 아버지를 위해 인당수에 몸을 던진 일이 잘한 일인가를 놓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꽤 많은 학생이 심청이의 행동이 옳지 못하다고 말했습니다.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려고 자녀가 죽음을 선택했다는 사실을 알면, 눈을 뜬들 아버지가 어떻게 살 수 있겠느냐고 하더군요. 눈으로 세상을 보기보다는 마음으로 보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아이들의 주장이 지금도 기억에 남네요.
3. 신문 기사로 토의 토론 하기
이번에는 신문기사를 보고 토의나 토론을 해볼까요? 동아일보 11월 7일자 A5면에는 “‘로봇다리 수영선수’ 14세 세진이와 ‘戰士’ 엄마”라는 기사가 있습니다.
①활동 1: 기사 내용 알기=토의를 잘하려면 기사 내용을 이해해야 합니다. 저학년 어린이라면 부모와 함께 읽으면서 설명하는 게 좋습니다. 이때는 사실과 의견을 구분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②활동 2: 토의하기=기사를 보니 장애를 가진 세진이를 건강한 사회인으로 키우기까지 어머니가 많이 노력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어머니가 세진이 어머니처럼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장애를 가진 친구도 사회인으로 잘 살도록 우리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라는 주제를 정할 수 있겠죠. A4 용지를 8등분해서 카드를 만들고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나눠 보세요.
③활동 3: 토의 결과 정리하기=카드 토의로 의견을 모은 뒤에는 가장 좋은 의견을 뽑는 겁니다. 5개를 뽑는다면 한 사람이 스티커를 5개씩 갖고,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곳에 스티커를 붙이면 됩니다. 하나의 의견에 하나씩 붙일 수도 있고, 여러 장을 붙일 수도 있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 캐나다로 유학을 간 제자가 있습니다. 영어가 익숙하지 않아 처음에는 힘들어했지만 지금은 아이비리그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합니다. 이 학생은 고등학교 때부터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토론이나 발표 중심의 수업에서 늘 칭찬을 들었습니다. 외국 학생들이 전혀 모르는 한국 또는 동양의 사례를 근거로 제시해서 교사나 다른 학생들을 놀라게 했다는군요.
올해도 한국은 노벨상 수상자를 내지 못했습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내는 유대인은 토의나 토론을 통해 인재를 기릅니다. ‘밥상머리의 대화’로 시작하는 토의와 토론에 익숙하면 남의 이야기를 귀담아듣고 자신의 의견을 차근차근 말하는 습관이 생깁니다. 가족이 함께 신문을 보면서 토의하고 토론하는 학생이라면 미래에 노벨상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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