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우리학교 공부스타]서울 동일여고 1학년 이예린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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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1월 15일 03시 00분


오른팔 마비→극복… “내 인생은 롤러코스터”

중학 시절 오른팔 마비로 인해 성적이 크게 떨어졌던 서울 동일여고 1학년 이예린 양은 피나는 노력으로 상위권 성적과 함께 꿈, 희망을 되찾았다.
중학 시절 오른팔 마비로 인해 성적이 크게 떨어졌던 서울 동일여고 1학년 이예린 양은 피나는 노력으로 상위권 성적과 함께 꿈, 희망을 되찾았다.
《롤러코스터. 서울 동일여고 1학년 이예린 양(16)은 지난 3년간의 삶을 이렇게 비유했다.
“말하자면 꼭대기에 있던 열차가 아래로 확 떨어진 거예요. 저 바닥까지, 다시는 올라오지 못할 것처럼. 하지만 한 번 바닥을 치니까 열차는 또 방향을 틀더라고요. 나중에 돌이켜보면 우여곡절 많았던 지난 시절이 오히려 재미있게 기억될 것 같아요. 오르락내리락해서 더 신나는 롤러코스터처럼요.” 3년 동안 이 양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중1 때만 해도 이 양은 대부분 시험에서 반 1, 2등을 하는 상위권이었다. 뚜렷한 목표의식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착하고 성실한 학생’으로서의 자기 모습이 좋았다.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도, 칭찬 받는 것도, 주목 받는 것도 좋았다. 매일 예습·복습을 실천하고, 노트필기를 정리할 땐 한 글자 한 글자 정갈하게 써내려갈 만큼 완벽을 추구하는 성격이었다.

악몽은 어느 날 밤, 소리 없이 찾아왔다. 중1 겨울방학. 자려고 누웠는데 오른팔이 아파왔다. 누군가 콕콕 찌르는 느낌이었다. ‘컴퓨터를 좀 오래 했나’ 하며 별 생각 없이 잠들었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오른팔에 이상을 느꼈다. 어깨가 올라간 채로 내려오지 않았다. 움직일 수도 없었다. 찌르고 때려 봐도 무감각했다. 이 양의 오른팔은 얼음처럼 굳어 있었다.

“신경마비였어요. 정확하게는 ‘상완신경총마비’로, 어깨에서 손가락 끝까지 팔 전체가 마비되는 병이에요. 의사선생님도 제 나이에 발병하는 건 처음 보셨대요. 확실한 원인은 아직도 모르겠어요.”

오른손잡이인 이 양의 일상은 180도 달라졌다.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했다. 난생 처음 숟가락을 왼손으로 들었다. 밥 한 술 뜨기도 쉽지 않았다. 공부는 사치였다. 다니던 학원은 모두 끊었다. 병원을 왕래하며 물리치료와 검사를 받고 집에선 팔운동으로만 시간을 보내는 나날들이 이어졌다.

2학년이 되어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점심시간엔 친구들이 식판을 날라줬고 체육시간엔 혼자 운동장 한쪽에 앉아 구경만 했다. 쉬는 시간, 친구들과 모여 손을 이용해 하던 게임도 딴 세상 이야기가 됐다.

수업시간엔 더욱 짜증이 치밀었다. 필기를 하려면 왼손으로 오른팔을 들어 책상 위에 올려놓고 연필을 쥐어주어야 했다. 그나마도 조금 움직이는 손목의 힘으로 간신히 쓰고 있건만, 야속한 오른팔은 자꾸 책상 아래로 흘러내렸다. 내 몸이 왜 내 뜻대로 되지 않는지…. 답답해 눈물이 났다. 이대로 오른팔을 영영 못 쓸까 무서웠다. 어느 순간 이 양은 공부를 놓아버렸다. 그렇게 1년을 보냈다.

“낙심을 넘어 포기 상태에 이르렀어요. 학교 갔다 오면 TV 앞에서 하루를 보냈어요. 성적이 걷잡을 수 없이 떨어졌는데 공부가 문제가 아니었던 터라 충격도 안 받았죠. 중3 올라갈 즈음엔 팔을 힘겹게 위로 뻗을 수 있는 정도까지 좋아졌지만 이미 공부에 대한 의지, 관심을 모두 잃은 상태였어요.”

하향곡선을 그리던 성적은 중3 2학기 중간고사 때 최하점을 찍었다. 과목 평균은 40점대. 수학은 20점대였다. 성적과 함께 성격도 변했다. 제일 친한 친구 한 명을 제외하고는 스스로 벽을 쌓았다. 반 친구가 식판을 들어주면 ‘아프다고 동정하나’ 싶어 자존심이 상했다. 작은 일에도 신경질을 내니 친구들과의 다툼도 잦아졌다. 남은 건 소외감, 패배감밖에 없는 것 같았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고 했던가. 절망 속에 살던 이 양이 다시 희망의 싹을 틔운 건 고교 원서를 접수할 때. 친구들은 저마다 “예고에 가겠다” “인문계고에 진학해 대학은 경영학과로 가고 싶다”면서 진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난 지금 뭐하고 있나. 이대로 주저앉아 평생 이렇게 살 건가’라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고등학교에 올라가면 새로운 나로 다시 태어나겠어!’ 오른팔은 많이 호전된 상태였다. 중3 겨울방학, 공부를 시작했다. 2년을 통째로 날리다시피 했으니 처음엔 어떤 문제집으로 어떻게 계획을 세워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중2 수학부터 꺼내들었다. 인터넷 강의를 적극 활용했다. 영어는 ‘해리포터’ 원서를 읽으며 어휘와 문법을 익혔다. 하루 대여섯 시간은 꼼짝없이 공부에 다걸기(올인)했다.

“학원은 다니기가 싫었어요.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팔 때문에 1년 반 동안 남의 도움을 받으면서 지내서 그런지, 나 스스로 일어나 우뚝 서는 모습을 누구보다도 내 자신이 보고 싶어 하더라고요.”

노력 끝에 고교 반 배치고사에서 전교생 약 490명 중 170등으로 입학한 이 양. 하지만 고교수업을 따라가기가 쉽진 않았다. 특히 중학과정이 심화되는 수학은 더 어려웠다. 수업시간에 중학과정과 관련한 개념이 나오면 그날 집에서 인터넷 강의를 들으며 보충했다. 영어는 모르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예문을 찾아 외웠다. 매일 밤 자정, 때론 새벽 1시까지 공부했다. 희망의 싹은 꽃을 피웠다. 고1 첫 중간고사 결과는? 반 3등, 전교 23등.

“이게 내 점수가 맞는지, 정말 놀랐어요. 기쁘고 자랑스럽고.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얻은 게 가장 컸죠.”

그는 중학교 때 친구들에게 많이 미안하다고 했다. 몸과 마음이 힘들었던 탓에, 도와주려던 친구들의 진심을 삐뚤게 받아들여서 미안하다고. 그래서 이 양은 지금 친구들을 좀더 이해하고 가까이 다가가려 노력한다. 진심을 보지 못하는 실수를 다시는 저지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친구관계도 회복됐어요. 아프고 답답했던 때를 생각하면 아직 울컥하지만 배운 점이 많아요. 어떤 힘든 일이 닥쳐도 긍정적으로 이겨낼 수 있는 내공, 역지사지의 배려심을 얻은 것 같아요. 뚜렷한 목표도 생겼어요. 장래엔 한국사를 가르치는 교사가 돼서 과거의 저처럼 절망에 빠진 학생들을 도와주고 싶어요.(웃음)”

장재원 기자 jjw@donga.com
※‘우리학교 공부스타’의 주인공을 찾습니다. 중하위권에 머물다가 자신만의 학습 노하우를 통해 상위권으로 도약한 학생들을 추천해 주십시오. 연락처 동아일보 교육법인 ㈜동아이지에듀. 02-362-5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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