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0만 원. 부산에 사는 A 씨(47·여)가 지난 한 달 간 고3 아들의 수시시험을 보는 데 쓴 금액이다. 일반가정의 한 달 수입을 훌쩍 뛰어넘는 비용의 주범은 서울소재 대학에 시험을 보러 가는 과정에서 들어가는 교통비, 숙박비, 식비 같은 부대경비다.
수도권에 사는 학부모도 총 100만 원에 달하는 수시 원서비용으로 고충을 호소하지만 지방 수험생 학부모에게 이 정도 금액은 약과다. 서울로 한 번 시험을 보러 올라가는 데만 전체 원서전형료를 합친 금액 이상이 들어가는 일도 많다.
A 씨는 지난달 아들이 서울 한 대학의 입학사정관전형 시험을 보면서 자신과 아들의 왕복 열차(KTX)비 20여만 원. 모텔 숙박비 7만 원. 택시비와 식비 20여만 원 등 총 50만 원 정도를 썼다. 1차 전형에서 떨어져 면접을 보진 못했지만 최종 전형까지 갔으면 한 대학의 시험을 보는 데만 100만 원 이상이 들어가는 상황이었다.
A 씨는 “평생 한 번일지도 모르는 기회인데 돈이 많이 들어간다고 시험 보는 걸 포기할 순 없다”면서 “집의 한 달 수입이 월 300만 원 정도지만 시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시험비용을 댔다”고 말했다.
많은 지방 수험생 학부모가 수시전형에 들어가는 비용 때문에 어려움을 호소한다. 이런 현상은 올해 수시모집이 역대 최고 경쟁률을 기록하면서 더 심해졌다. 많게는 10여 개 이상의 대학별 고사를 보러 다니기도 하는데, 시험을 보러 가는 데만 대학마다 원서비의 3∼10배의 비용이 추가로 필요하다.
지방 학생들은 시험 날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 하루 전날 서울로 올라가 숙박을 하는 경우가 많다. 시험이 오전에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전날 올라가야 하는 경우도 적잖다. 대부분의 학부모가 서울 지리에 익숙하지 않은 자녀가 걱정돼 함께 움직이기 때문에 교통비는 두 배로 들어간다. 특히 여학생 학부모는 안전문제 때문에 동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수시비용 때문에 지원 자체를 포기하는 일도 발생한다. 역시 지방에 사는 대입 수험생 어머니 B 씨(44)는 최근 마음이 편치 않다. 전교 최상위권 아들이 시험 경비문제로 서울지역 대학 중 3곳만 지원했기 때문이다. 주위의 다른 부모들은 비슷한 합격 커트라인에 있는 대학 여러 곳에 원서를 넣었지만 B 씨는 경제문제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비용을 아끼기 위해 아이는 아침 일찍 아빠와 함께 KTX를 타고 상경했다 버스로 내려와도 봤지만 여기에도 30만 원 정도가 필요했다.
B 씨는 “경제적 여유가 없어 시험 볼 기회 자체가 박탈된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다”면서 “주위에도 서울로 올라가 시험을 보는 비용이 부담돼 실력이 되지만 지원 자체를 포기하는 학부모가 많다”고 말했다.
수능이 끝났지만 지방 학부모들의 수시비용 부담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올해 수능이 지난해보다 쉽게 출제되면서 중상위권 학생 간의 변별력이 떨어져 수시2차 전형에 지원자가 몰릴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부산지역 고교의 C 교무부장은 “가채점 결과 불안한 학생들이 수시2차에 지원할 가능성이 높다. 지금까지 우리 학교에서 고3들이 쓴 수시원서만 1500장이고, 서울에서 시험을 보는 비용을 감안하면 모두 수억 원이 들어가는 상황”이라며 “1차 합격자를 8배 정도까지 뽑고 대학별 고사를 보게 하는 대학도 있는데, 합격이 확실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면접 10분을 보기 위해서 수십 만 원이 들어가는 교사들의 불만이 많다”고 지적했다.
최미숙 학교를사랑하는학부모모임(학사모) 대표는 “여러 대학에 중복 지원하는 현상을 학부모가 자제해야 한다는 일부 목소리도 있지만 합격 여부를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몇 개 대학만 소신 지원하라는 말은 현실적이지 않다”면서 “당장 대학에서 지방학생의 시험시간을 오후로 조정하는 등 조금만 배려해줘도 비용문제를 줄일 여지가 생긴다”고 말했다. 이태윤 기자 wolf@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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