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한 내신 스트레스 탓에 외고나 자율고에서 일반계고로 전학하는 고교생이 적잖다. 이중 일반계고로 전학한 후에도 부적응이 반복되면서 결국 외고에도 속하지 못하고 일반계고에도 섞이지 못하는 ‘경계인’ 같은 존재로 전락하는 경우가 적지 않게 있다. 동아일보DB
《고2인 A 군(17)은 중학교 졸업 당시 수도권 외국어고 진학을 결심했다. 외고에 들어가 중간 정도 성적만 유지해도 서울시내 최상위권 대학 진학은 문제없을 거라 판단했기 때문. 그러나 외고에 입학한 A 군은 현실의 높은 벽을 실감했다. 고1 1학기 중간고사에서 그가 받은 성적은 전교 ‘끝에서 10등’. A 군에게 성적은 거대한 스트레스가 됐다. ‘차라리 일반계고에 가서 좋은 성적을 받는 게 대입에 유리하지 않을까?’ 결국 A 군은 올해 초 서울의 한 일반계고로 전학했다.》
그렇다면 일반계고로 전학한 A 군은 행복했을까? 그렇지 못하다. 전학 후 처음 치른 고2 1학기 중간고사 성적은 전교 20등대 후반. 외고 내신시험보다 비교적 쉬운 문제를 보고 ‘전교 5등 이내는 문제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A 군에겐 충격이었다.
교우관계에도 문제가 생겼다. 한 최상위권 친구는 A 군에게 매우 어려운 수학문제를 물어보고는, 그가 쩔쩔매면 ‘외고에서도 이 정도까진 배우지 않는구나…’라며 은근슬쩍 비꼬기도 했다.
A 군처럼 과도한 내신 스트레스 탓에 외고나 자율고에서 일반계고로 전학하는 고교생이 적잖다. 외고에서 일반계고로 전학한 학생 수는 2009년의 경우 약 350명. 이 숫자는 지난해와 올해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이에 따른다면, 매년 외고생 100명 중 1∼2명이 일반계고로 전학하는 셈이다.
문제는 일반계고로 전학한 후에도 부적응이 반복되면서 결국 외고에도 속하지 못하고 일반계고에도 섞이지 못하는 ‘경계인’ 같은 존재로 전락하는 경우가 적지 않게 있다는 점. 이들은 기대만큼의 성적이 나오지 않아 학업에 대한 흥미를 잃기도 하며, 학급친구들과도 어울리지 못하고 외톨이가 되기도 한다.
외고 출신 전학생 중 일부가 일반계고에서 실력 발휘를 여전히 못하는 이유는 뭘까?
고교교사 및 교육전문가들은 외고와 일반계고 학생 간 실력차가 예전만큼 크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예전엔 전국단위 경시대회에서 우수한 수상실적을 냈거나 어려운 고교별 선발고사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최상위권 수험생만이 외고에 합격했다. 하지만 최근 고교입시에 자기주도 학습전형이 도입되면서 가령 중학교 영어내신만 우수한 학생도 외고에 합격할 수 있게 된 것.
서울의 한 고교 진학지도상담교사는 “단순히 영어만 잘해 외고에 합격한 학생들이 일반계고로 전학할 경우, 수학 과학 등 다른 과목에서 내신 성적이 좋지 않을 수 있다”면서 “실제 한 외고 출신 전학생의 경우 수학과 과학이 80점대 중반인 탓에 늘 전교 30등대에 머물렀다”고 말했다.
올해 초 서울의 한 외고에서 일반계고로 전학한 2학년 B 군(17)은 “주위의 지나친 기대에 부담감이 크기 때문”이라고 토로했다. B 군은 “일반계고로 전학한 후 첫 개별 면담 때 담임선생님이 ‘학교에선 넌 당연히 서울대에 갈 것으로 믿고 있다’고 말했다”면서 “시험 때마다 살 떨릴 정도로 긴장감이 흐르는 외고의 학업분위기를 견디지 못해 일반계고로 전학을 결심했지만 오히려 부담과 긴장이 더해 공부에 대한 흥미를 상실했다”고 털어놓았다.
또 일부 외고 출신 전학생 중 내신성적은 높게 나오지만 모의고사 성적은 계속해서 떨어지는 고민거리를 안고 있는 경우도 있다. 이에 대해 일반계고 전학 후 전교 10등 이내 성적을 유지하는 외고 출신 2학년 C 양(17)은 “외고에 비해 학업 분위기, 시험 난도 등에서 긴장감이 떨어져 공부에 동기 부여가 될 만한 요소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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