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생이 뭘 안다고… 서울 데려가 “MB 심판” 외치게한 어른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1월 18일 03시 00분


■ 충주 이오덕대안학교 11명 FTA반대 불법집회 참석 논란

16일 저녁 이오덕학교 소속 학생 11명이 서울 중구 청계천 인근에서 열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불법 집회에 참석해 ‘이명박 정권 심판!’ ‘한미 FTA 저지!’ 등이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있다. 제보 사진
16일 저녁 이오덕학교 소속 학생 11명이 서울 중구 청계천 인근에서 열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불법 집회에 참석해 ‘이명박 정권 심판!’ ‘한미 FTA 저지!’ 등이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있다. 제보 사진
16일 오후 7시 서울 청계천 인근에서 열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불법 집회. 100명가량이 참석한 가운데 옹기종기 모여 앉은 앳된 얼굴의 초등학생 11명이 눈에 띄었다. 쌀쌀한 날씨에 아이들은 손에 ‘한미 FTA 저지!’ ‘이명박 정권 심판!’ ‘한미 FTA는 당신에게 기회가 아니라 재앙일 수 있습니다’라고 적힌 붉은색 플래카드를 들고 있었다.

아이들은 모두 충북 충주시 신니면에 위치한 ‘이오덕학교’에 다니는 학생들로 집회 참석을 위해 인솔자 두 명과 함께 이날 서울로 올라왔다. 이오덕학교는 초중학교 과정을 가르치는 대안학교로 아동문학가인 고 이오덕 선생의 교육 철학을 이어받아 이 선생의 장남 이정우 씨가 운영하고 있다. 학교 홈페이지에 따르면 아이들은 이 선생의 저서를 바탕으로 글쓰기 농사 청소 빨래 등의 교육을 받고 있다.

시위대 주변을 둘러싼 12개 중대 700여 명의 경찰은 “사전에 신고되지 않은 불법 집회이니 해산하라”고 세 차례 경고했지만 어른들은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아이들도 별일 아니라는 듯 손에 피켓을 든 채 웃고 떠들었다. 이날 오후 9시 반까지 두 시간 반 동안 이어진 집회에서 아이들은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당시 현장에 출동했던 한 경찰은 “아이들이 해산 명령이 무슨 뜻인지 알기나 했겠느냐”며 “시위대와 경찰 간 물리적 충돌이 벌어졌더라면 아이들이 다칠 수도 있었던 위험한 상황이었다”고 전했다.

교장을 맡고 있는 이정우 씨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아이들이 평소 부모나 주변 어른들이 한미 FTA 반대 집회에 참석하는 것을 보면서 FTA와 집회가 무엇인지 궁금해했다”며 “지난주 아이들끼리 ‘어린이회의’를 열고 자신들도 집회에 가보고 싶다는 의견을 내 교사와 학부모가 인솔해 데려갔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불법 집회인지 알고 있었느냐고 묻자 “아이들 교육 때문에 간 것이기 때문에 불법이고 합법이고는 중요하지 않다”고 답했다. 이 학교에서 근무하는 다른 교사 역시 “아이들이 평소 FTA에 대해 궁금해해서 데려간 것”이라고 했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한 남성은 “어린아이들이 시위대 안에 있어 놀랐다”며 “추운 날 늦은 밤까지 경찰에 둘러싸여 있던 아이들이 놀라진 않았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굳이 불법 집회에 아이들까지 데려올 필요가 있었는지 안타깝다”고도 했다. 서울 남대문경찰서는 이날 채증 내용을 바탕으로 집회를 연 주최자를 처벌할 예정이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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