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저녁, 서울 광화문 인근의 한 카페. 한 남자가 의자에 앉아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며 누군가를 기다린다. 그때 마침 또 다른 남자가 유리문을 밀며 카페 안으로 들어왔다. “어, 여기야.” 기다리던 남자가 문 쪽의 남자에게 손을 흔들었다. “오랜만이에요, 선배.”
서울의 한 초등학교 박모 교사(29)와 경기의 어느 초등학교 이모 교사(28). 둘은 같은 고등학교 선후배 사이다.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음료를 마시며 회포를 풀었다. 초등학교 남교사 두 명의 ‘수다’를 재구성했다.
이 교사: 선배, 얼굴이 좋아 보여요. 무슨 좋은 일 있어요?
박 교사: 드디어 우리 학교에 첫 남자 후배교사가 들어왔어. 학교에 온 지 4년 만의 일이야. 그동안 얼마나 기다렸던지….
이 교사: 부러워요. 요즘 남자 후배교사 받기가 쉽지 않다던데…. 전 아직 2년차라 남자 후배교사는 꿈도 못 꿔요. 그래도 올 초 처음으로 담임을 맡았는데 학부모님들이 무척 반겨주시더라고요. 우리 학교 선생님 35명 중에 남자는 고작 4명밖에 없어요. 어떤 학부모는 학기 초 집단상담 때 ‘로또에 당첨됐다’란 말을 건네시더라고요. 경력이 얼마 되지 않는데도 절 응원해주시는 학부모님들이 고마웠어요.
박 교사: 학교에 남교사가 많이 없으니깐. 그런데 요즘 학교생활은 어때?
이 교사: 말도 마세요. 얼마 전에는 학교에서 전교생을 대상으로 학예회를 했는데 남교사들만 교실에서 강당까지 의자를 나르느라 엄청 고생했어요. 힘쓰는 일은 남자가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여선생님들이 적극적으로 도와주지 않으니 서운하더라고요.
박 교사: 나도 그래. 올해도 보이스카우트를 맡았거든. 주말에도 일을 해야 해서 교사들이 다들 꺼리는 직책 중 하나잖아. 이번엔 특수부장(교무부, 생활체육부, 방과후교실부 등 교내 모든 부서를 총괄하는 직책)도 내 차지가 됐어. 원래 이 역할은 연륜 있는 교사가 맡는 게 좋은데 업무가 많아 퇴근이 늦어지니 다들 기피하더라고. 계속 밀리다 나한테까지 제안이 온 거야. 안 하겠다고 말하긴 곤란하잖아. 주변의 남자교사들에게 물어보니 대부분이 이미 특수부장을 맡고 있더라고.
이 교사: 저도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어야겠네요.(웃음) 초등 여학생들은 어떻게 지도하세요? 전 올해 5학년을 맡았는데요. 여학생들의 경우 5학년이면 사춘기가 시작되잖아요. 그래서인지 어려운 점이 있어요. 학생들과 소통하기 위해 스킨십을 간혹 하는 편인데, 어깨를 토닥이는 것만으로도 ‘어머, 선생님. 이거 성추행이에요!’라고 극단적으로 반응하는 여학생이 있어요. 깜짝 놀랐죠. 그 뒤로는 여학생을 대할 때 특별히 신경을 쓰고 있어요.
박 교사: 남교사라면 으레 겪는 일이지. 그래도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은 참 즐거워. 그 맛에 선생님 하는 거 아닐까. 그런데 여자가 많은 집단에서 생활하다보니 우리도 조금 여성스러워진 것 같지 않아? 금요일 밤에 술을 마시는 게 아니라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이렇게 수다를 떨고 있으니….(웃음) 선생님 되기 전보다 말도 더 많아진 것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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