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신보다 수술” 원주민 1만명 치료… ‘울지마 톤즈’ 이태석賞 첫 수상자에 ‘부시먼 닥터’ 이재훈씨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1월 23일 03시 00분


고 이태석 신부를 기리기 위한 ‘이태석상’의 첫 수상자로 선정된 외과전문의 이재훈 씨(왼쪽)가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에서 환자를 돌보고 있다. 외교통상부 제공
고 이태석 신부를 기리기 위한 ‘이태석상’의 첫 수상자로 선정된 외과전문의 이재훈 씨(왼쪽)가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에서 환자를 돌보고 있다. 외교통상부 제공
아프리카 동쪽의 섬나라인 마다가스카르에는 아직도 의사나 의료시설이 없는 마을이 2만여 개에 이른다. 생명이 위태로운 많은 환자가 치료의 손길을 절실히 기다리는 곳이다.

이곳에서 의료봉사활동을 해온 외과전문의 이재훈 씨(44)는 주민들 사이에서 ‘부시먼 닥터’로 통한다. 의료시설이 전혀 없는 들판이나 숲 속에서 능숙하게 수술을 한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다. 이 씨는 22일 외교통상부가 남수단에서 봉사활동을 하다 숨진 이태석 신부를 기리기 위해 제정한 ‘이태석상’의 첫 수상자로 선정됐다.

▶본보 9월 30일자 A2면 참조
정부 “이태석賞 만들어 빈국 봉사활동 지원”


이 씨는 고려대 의대를 졸업한 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서 위장과 대장, 갑상샘 등 요즘 외과 의사로는 드물게 다양한 분야의 전임의 과정을 마쳤다. 아프리카 오지에서 의료 활동을 하려면 여러 질병을 모두 다룰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준비한 경력이다. 어렸을 때부터 품었던 ‘피부가 검은 어려운 사람을 돕고 싶다’는 생각은 2000년 외과 레지던트 과정을 마친 뒤 르완다의 한 작은 병원에서 한 달간 봉사활동을 하면서 더 절실해졌다고 한다.

이 씨는 2006년부터 마다가스카르에서 본격적인 의료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수도 안타나나리보 근처의 이토시 병원에 근무하며 병원이 없는 다른 지역으로 이동진료를 병행했다. 대부분 도로조차 없는 오지여서 구호단체의 도움을 받아 경비행기나 헬기를 타야 들어갈 수 있는 곳이다. 평균 1000km 떨어져 있는 지역에 들어가기 위해 사나흘씩 걷기도 했다. 그는 이렇게 매년 수술 100여 건을 해왔다. 지금까지 치료해준 환자만 1만 명에 이른다.

현지 주민들이 외부인에 대해 갖는 두려움, 미신을 앞세운 이들의 진료 거부 등은 때로 이 씨의 활동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었다. 혓바닥의 종양으로 길이 15cm의 혀를 늘어뜨린 채 제대로 먹거나 말하지도 못하는 6세 소년 마나히 군은 한국에서 수술을 받게 하려는 이 씨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무당의 반대에 부닥쳐 결국 한국행 비행기를 타지 못했다.

그러나 이 씨의 진심을 알게 된 주민들은 이제 수십 km 떨어진 다른 지역에서도 며칠씩 걸어 진료를 받으러 온다. 이 씨는 “찾아갈 수 있는 무의촌 마을이 1년에 10곳 정도밖에 되지 않고 주변 마을 환자들이 찾아온다고 해도 2만 개의 마을을 다 가려면 200년이 필요하다. 나 같은 이동진료 의사가 100명만 있다면 이곳 사람들도 2년에 한 번은 진료를 받을 수 있다”며 뜻있는 의사 동료들의 동참을 호소했다.

고 이태석 신부
고 이태석 신부
이 씨의 이런 봉사활동 소식은 마침 ‘이태석상’을 제정하고 수상자를 찾고 있던 외교부에 전해졌다. 심사위원회는 “이태석 신부의 봉사정신을 가장 잘 실천한 인물”이라며 후보 50여 명 가운데 이 씨를 수상자로 선정했다. 이 신부의 친형이자 심사위원 중 한 명인 이태영 신부가 그를 강력히 추천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상식은 23일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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