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유학생 10만 시대… 추악한 제노포비아]<下>공존의 코리아로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1월 24일 03시 00분


공부 돕고 함께 어울려 뛰다보니 혐한파가 지한파 친구로

“중국 친구들이 박 터뜨리기 게임을 가장 재미있어 하던데 내년 운동회 때도 꼭 다시 했으면 좋겠어요.”

21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휘경동 경희대 중앙도서관 시청각실에 유학생 지원동아리 IFCC 회원들이 모여 앉아 최근 열린 ‘외국인 유학생 운동회’ 뒤풀이를 하고 있었다. 2003년 만들어진 이 동아리는 35명의 한국인 회원이 각각 1, 2명의 외국인 유학생을 도맡아 이들의 한국생활 적응을 돕고 있다. 학기마다 한국인과 외국인이 함께 어울려 뛰는 운동회를 하는가 하면 학교 앞 가게를 빌려 외국인 환영 파티를 열기도 한다.

○ “웰컴 외국인 친구들”

최근 한국을 찾는 외국인 유학생이 급증하면서 학교 안팎에서 이들을 따돌리거나 인권을 침해하는 문제가 나타나고 있지만 한편에서는 이들과의 공존을 위해 노력하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성균관대의 외국인 유학생 지원 동아리인 ‘하이클럽’ 회원들은 학교 축제 기간마다 외국인 유학생과 함께 세계 각국의 다양한 음식을 선보이고 있다. 식사를 하면서 외국인 유학생들이 선보이는 나라별 전통춤도 구경할 수 있다. 이색적인 음식과 춤을 통해 한국인과 외국인이 서로에 대해 갖고 있는 막연한 두려움을 없애자는 취지의 행사다. 동아리 회원들은 축제 기간 외에도 한국어 수업에 어려움을 느끼는 외국인 유학생에게 통역 번역을 해주기도 하고 새로 유학 온 학생들에게는 휴대전화 개통법과 대중교통 이용법 등 한국사회에 적응하는 법을 알려준다.

동아리 회장을 맡고 있는 김희진 씨(22·여·러시아어문학과)는 “한국을 불친절한 분단국가로만 알고 온 외국인 친구들도 고국으로 돌아갈 때 ‘한국인은 정말 친절하다’고 말한다”며 “이럴 때 가장 뿌듯함을 느낀다”고 했다.

○ 외국인 유학생 “우리도 반성”

본보가 만난 외국인 유학생 중 일부는 “한국인과 공존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라고 인정하며 “외국인들 스스로도 태도를 바꿀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중국인 저우만(周曼·24·중앙대 신문방송 4) 씨는 “발음을 할 때 실수를 할까 봐 겁나 유학생들 스스로 발표나 한국인 친구 사귀기를 기피하는 것은 반성해야 할 일”이라며 “실수가 두려워 ‘소극적인 중국인’으로 남기보다 외국인으로서 실수는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중국에서 온 천쑹저(陳松哲·26·경희대 대학원) 씨도 “중국 학생들이 한국문화에 몇 번 이질감을 느끼고 나면 바로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고 중국인끼리만 어울려 다니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중국인 중에는 한국인들이 노래방에서 춤추고 노는 것만 봐도 ‘이상한 문화’라고 생각하고 편견을 갖는 사람이 있다”며 “중국인들도 상대방을 알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인들과의 소통을 강화하기 위해 외국인으로 구성된 대학생회도 속속 설립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유학생도 학내 구성원으로서 다양한 목소리를 내겠다는 것이다. 경희대에 다니는 유학생들은 다음 달 학교를 대표하는 외국인 유학생회를 설립하기로 하고 곧 후보자 등록과 관련한 공고를 낼 예정이다. 2009년 9월 학생회를 설립한 대구가톨릭대의 외국인 학생 400여 명은 학기 중 한국인과 교류할 수 있는 다양한 문화행사를 주관한다.

○ ‘상호 윈윈’을 위해

교육과학기술부에 따르면 외국인 유학생 1만 명이 늘면 1600억 원가량의 유학·연수수지 개선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경제적 이득은 물론이고 해외에 친한 및 지한 인사를 늘릴 수 있다는 점에서 외국인 유학생 유치는 정치·외교적으로도 의미가 크다. 일본이 우리보다 앞서 1983년 외국인 유학생 10만 명 유치 계획을 수립한 데 이어 최근에는 2020년까지 30만 명을 유치하겠다고 벼르는 이유다. 싱가포르와 중국도 우수 외국인 유학생을 유치하기 위해 국가 차원에서 발 벗고 나섰다.

유정희 국제교류문화진흥원장은 “우리가 어떻게 대접하느냐에 따라 한국에서 공부하는 외국인 유학생들은 친한파(親韓派)가 될 수도, 혐한파(嫌韓派)가 될 수도 있다”며 “한국에서 공부하는 외국인 유학생 자체가 큰 자산이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백연상 기자 baek@donga.com  
▼ “먼저 다가서라, 뭉쳐다니며 왕따 자초말라” ▼


■ 차별, 이렇게 극복해라
“인신공격-소외 당했지만 봉사활동하며 인맥 넓혀… 그들의 문화 받아들여야”


외국으로 가는 한국 유학생들도 제노포비아(외국인 혐오증)나 ‘왕따’에 시달릴 때가 적지 않다. 그러나 이를 극복한 학생들은 스스로 다른 문화에 동화되려는 노력을 적극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국내 적응에 성공한 외국인 유학생들도 “누가 다가와주길 기다리지 말고 스스로 다가서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올해 2월 중앙대를 졸업한 최성희 씨(25·여)는 2009년 9월∼2010년 5월 교환학생으로 미국 위노나주립대에서 공부했다. 최 씨는 유학생활 초기 한 미국인 학생이 “한국인은 개도 먹는다며? 그럼 이 벌레도 먹어봐”라고 말하는 것을 들어야 했다. 조별(組別) 발표에서 소외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최 씨는 다양한 학내 활동에 적극 참여하면서 적응에 성공했다. 그는 “외국인과 친구가 되고 싶어 하는 학생들이 조직한 봉사활동단체를 통해 인맥을 넓혔다”며 “모든 학교에 있는 외국인 관련 동아리나 지원 프로그램을 적극 활용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국내에서 공부하고 있는 외국인 유학생들도 비슷한 생각이었다. 경희대를 3년째 다니고 있는 중국인 W 씨(24)는 “많은 유학생이 한국생활을 힘들어하는데 힘들지 않은 유학생활이 어디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한국인 친구들이 도와주지 않았으면 3년을 버티지 못했을 것”이라며 “일부 자존심이 센 중국인 유학생들은 자기들끼리만 뭉쳐 다니는데 적극성을 더 길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마즈 라히미 미다니 씨(24·이란·부산 부경대)는 한국인 친구들과 개고기를 즐겨 먹는다. 그는 “한국인들은 여름철 더위를 이기기 위해 고단백 음식인 개고기를 먹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한 나라의 역사의 요체인 문화를 무조건 거부하는 것은 적응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국문화를 사랑하다 보니 쉽게 적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핀란드인 모르스크 예레 씨(23·한양대)도 “한국인들과 빨리 친해지고 싶어 축구부에 들어갔다”며 “처음엔 특유의 선후배 문화가 당황스러웠지만 어느덧 소속감을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유성열 기자 ryu@donga.com  
▼ “부끄럽다, 사과한다”… “거부감 있는건 사실” ▼


■ 자성과 관성 뒤섞인 반응
“지성인이 인종차별이라니”… “돈 벌러 온건 아니지않나”


‘한국에 유학 온 손님을 잘 대접해야 우리도 나가서 대접받는다.’(김창회 씨·okman258)

‘중국 정부와 중국인이 하는 행동을 보면 거부감과 편견이 생길 수밖에 없다.’(이도윤 씨·startbrood3)

동아일보가 21, 22일 보도한 ‘외국인 유학생 10만 시대’ 시리즈에 대해 동아닷컴과 주요 포털사이트에는 1000개가 넘는 다양한 댓글이 달렸다. 외국인 유학생이 한국에서 차별받고 있는 실상이 담긴 기사 내용에 대해 ‘어찌 됐든 외국인은 싫다’는 반응이 많았지만 자성의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캠퍼스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외국인 유학생들의 이야기를 다룬 21일자 기사와 관련해 이명재 씨(lmj007)는 동아닷컴에 ‘부끄럽습니다. 이 글을 보는 유학생들이 있다면 사과드립니다. 열심히 공부하십시오’라고 적었다. ID 서울시민은 ‘성숙하게 대응할수록 우리의 지위도 올라간다. 지성 있는 대학생이라면 인종차별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반면 ID 여성부×다문화박살은 ‘중국 불법체류자들은 자주 흉포한 범죄를 저지른다. 다문화 정책은 때려치워야 한다’고 적었다.

외국인 유학생이 최저임금을 보장받지 못하고 노동권을 침해당하는 문제를 지적한 22일자 기사에 대해서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김경신 씨는 ‘유럽과 미국도 유학생의 노동시간은 제한한다. 유학생들이 한국에 공부하러 온 거지 일하러 온 게 아니지 않느냐’고 적었다. 변경태 씨는 ‘나도 아르바이트만 20개 넘게 해봤지만 최저임금을 보장받은 적이 없다. 한국인의 인권부터 챙겨야 한다’고 했다. 반면 최재훈 씨는 ‘한국 학생이 외국인 유학생보다 우대받아야 하지만 그렇다고 외국인 유학생을 천대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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