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오전 8시 20분경 경북 영천시 완산동의 한 주차장. 초교 1학년인 S 군(8)과 S 군의 어머니 김모 씨(39)가 승용차에 타려던 순간 뒤에서 갑자기 괴한이 흉기를 들이대며 모자를 위협했다. 이 괴한은 S 군의 손만 낚아채 김 씨가 몰던 수입차에 태운 뒤 사라졌다.
김 씨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현장 주변 폐쇄회로(CC)TV부터 확인했다. 40대로 보이는 범인이 인근의 다른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장면이 화면으로 확인됐다. 범인은 미리 세워둔 자신의 차로 옮겨 타고 경북 경산 쪽으로 향했다. CCTV에서는 S 군이 조수석에 이불로 덮여 있는 모습이었고, 범인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상태였다.
사건 발생 24분 뒤인 8시 44분 S군 집에 전화가 걸려 왔다. 범인이었다. “경찰에 신고하지 마라. 재미없다.” 경찰은 즉각 전화 위치를 추적했다. 영천과 대구 사이에 있는 경부고속도로 경산휴게소 내 공중전화였다.
경북경찰청은 범인이 대구로 향하고 있다고 보고 대구 경찰에 공조수사 요청을 했다. 곧바로 대구경북 전 지역 경찰에 비상령이 내려졌고 실시간 통합지령을 통해 범인을 쫓기 시작했다. 그 사이 대구 동구 효목동 동촌유원지, 신천동 귀빈예식장, 대구 북구 고성동 대구시민야구장 등의 공중전화에서 “돈을 얼마나 준비할 수 있느냐” “현금 2억 원을 5만 원권으로 준비하라”는 범인의 협박 전화가 걸려 왔다. 범인은 경찰 추적을 피하기 위해 장소를 옮기고 있었던 것이다.
경찰은 대구시내 전역의 공중전화 부스에 경찰을 배치하고 주요 도주로를 수색했다. 그러다 협박전화를 걸기 위해 장소를 옮기던 범인의 차량을 대구 수성구 노변동 수성 나들목 입구 삼거리 주변에서 발견했다. 경찰은 무전으로 실시간 이동상황을 알리며 추격을 시작했다. 형사들의 자동차와 교통순찰차 등 경찰차 3대는 10km 거리를 합동 추격으로 포위망을 좁혀갔다. 교통순찰차를 들이받고 달아난 범인의 차량은 결국 경산시 남천면 한 공원에서 멈춰 섰다. 그 순간 차량 주변을 경찰관 10여 명이 에워쌌다.
검거 위기에 몰린 범인은 조수석에 있던 S 군을 운전석으로 당겨 끌어안은 뒤 목에 흉기를 들이대며 위협했다. 긴박한 상황은 10여 분간 이어졌다. 경찰은 “아이를 해치지 않으면 선처할 수 있다”며 자수를 유도했다. 담배도 줬다. 무력 진압을 하려다 아이가 다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긴 한숨을 몇 번 내쉰 범인은 결국 흉기를 내렸고 스스로 차에서 내렸다. 2시간 25분 만에 S 군이 범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순간이었다. 기민한 경찰의 대응에 범인은 오전 10시 45분경 돈 한 푼 못 만져보고 검거된 것이다.
범인은 2000년부터 4년 동안 S 군의 집에 세 들어 신발가게를 했던 이모 씨(40)였다. 사업 실패 등으로 1억 원의 빚을 지고 생활고에 시달리자 주인집 아들이었던 S 군을 범행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이 씨는 경찰 조사에서 “젊은 부부가 건물도 있고 외제차도 타 돈이 많아 보여서 범행을 계획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26일 이 씨에 대해 인질강도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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