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 악몽, 그 후 1년]찬바람에 바짝 긴장… 아침에 눈뜨자마자 소한테 달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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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1월 26일 03시 00분


■ 전국 축산농 “하루하루가 살얼음판… 미래가 불안”

올해 1월 충남 당진군에서 돼지 5500마리를 도살처분한 신모 씨(57)는 당시 충격으로 6개월 동안 서울의 대형병원을 오가며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구제역 보상금은 당시 돼지가격의 70% 선인 마리당 35만 원에 불과해 앉아서 8억 원가량 손해를 봤다. 정신을 차린 5월부터 돼지를 다시 들여오기 시작해 지금 2000마리를 키우고 있지만 정부 융자 3억 원에 갖고 있던 돈 3억 원을 보태야 했다. 신 씨는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고 돼지를 본격적으로 출하하는 내년 상반기까지는 빚으로 살 수밖에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해 겨울 전국을 강타한 구제역 파동으로 자식 같은 돼지와 소를 하루아침에 잃은 전국 축산농가들의 1년은 죽음과의 전투와 다름없었다. 많게는 수십억 원의 빚더미에 올라앉아 하루 생계를 꾸려나가기도 버거웠다. 도살처분 충격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은 축산농도 상당수다. 그대로 주저앉을 수 없어 빚을 내 재(再)입식했지만 구제역 바이러스의 활동력이 높아지는 겨울이 찾아오면서 축산농가들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더욱이 최근 타결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가져다주고 있다. 구제역 파동이 남긴 상처는 깊고도 넓었다.

○ 어렵게 재기했지만 불안감 여전


경기 이천시에서 올해 2월 돼지 6000마리를 도살처분한 김찬중 씨(49)는 최근 어미돼지(모돈) 220마리를 들여왔다. 김 씨는 “다시는 쳐다보기도 싫었지만 아는 게 축산이라 어쩔 수 없이 다시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산 지육(살코기) 경매가가 1kg에 6000원 선인데 미국산은 4000원으로 30%가량 저렴하다”며 “한미 FTA 타결로 어떤 여파가 미칠지 불안하기만 하다”고 하소연했다.

중·대규모 축산농들은 비용을 많이 투자한 축사시설 때문에 재입식을 통해 재기에 나섰지만 소규모 농장 중에는 포기한 곳도 적지 않다. 소 195마리를 키우다 도살처분한 공준식 씨(45·이천시)는 아직까지 소를 들여오지 않고 있다. 공 씨는 “시가의 80% 선으로 받은 구제역 보상금 8억여 원으로 대출금 등 빚잔치를 했는데도 아직도 3억 원의 빚이 남았다”며 “최근 1년간 이자 9%의 마이너스 통장에 의지해 살아왔다”고 털어놨다.

○ 선뜻 재입식할 엄두 못내


구제역 도살처분 농가 중 재입식한 축산농은 예상과 달리 적었다. 구제역 피해농가 6241곳 중 정부로부터 재입식을 위한 융자금을 지원받은 농가는 1707곳으로 27%에 불과했다. 소의 경우 사육 마릿수가 늘고 미국과 호주산이 시장을 잠식하면서 가격도 하락해 선뜻 재입식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구제역 파동 때 어미돼지를 생산하는 종돈업계도 큰 타격을 받았기 때문에 모돈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국내산보다 비싼 캐나다와 유럽산 어미돼지도 수입하고 있다. 높은 폐사율을 감수하고 비육돈을 모돈으로 활용하는 곳도 있다.

○ 비싼 수업료 내고 방역법까지 배워


축산농가의 방역 풍속도는 1년 전과는 180도 달라졌다. 백신 예방접종은 물론이고 축사 안팎에 대한 소독을 대폭 강화했고 자외선 소독장치까지 설치하는 게 이제는 일반화됐다. 폐쇄회로(CC)TV를 설치해 출입자를 감시하고 축사 일꾼들의 외출도 철저히 통제한다. 당연히 외부인은 함부로 들이지 않는다. 이런 풍경은 특정 지역이 아니라 전국 어디에서도 볼 수 있게 됐다. 한우 300여 마리를 재입식한 김창근 씨(48·안동시 정하동)는 “아침에 눈만 뜨면 곧장 소한테 달려가 상태를 살핀다”며 “외출도 삼가고 우사를 매일 소독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천=남경현 기자 bibulus@donga.com  
안동=장영훈 기자 jang@donga.com  
당진=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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