反FTA 집회 과격화 왜? 폭력시위 뒤엔 치고 빠지는 ‘상습 집회몰이꾼’ 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1월 29일 03시 00분


바리케이드에 둘러싸인 광화문광장 박건찬 서울 종로경찰서장이 시위대로부터 집단 폭행을 당한 지 이틀 만인 28일 오후 반(反)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집회가 재개됐다. 경찰이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의 시위를 원천봉쇄하기 위해 광장 주변에 경찰 차량으로 바리케이드를 설치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바리케이드에 둘러싸인 광화문광장 박건찬 서울 종로경찰서장이 시위대로부터 집단 폭행을 당한 지 이틀 만인 28일 오후 반(反)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집회가 재개됐다. 경찰이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의 시위를 원천봉쇄하기 위해 광장 주변에 경찰 차량으로 바리케이드를 설치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이달 초부터 서울 도심 곳곳에서 열려온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집회에서 이른바 ‘집회 몰이꾼’들이 판을 치고 있다. 몰이꾼들은 합법적 범위 내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집회에 참석한 일반 시민들까지 조직적으로 몰아 도로 점거 등 불법 행위를 주도하고 있다. 경찰과 대치 상황을 만들어 물리적 충돌을 유발하기도 한다. 불법, 폭력 집회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일반 시민들 가운데 이들 몰이꾼을 따라갔다가 경찰에 연행되는 등 봉변을 당하는 경우가 늘면서 트위터와 온라인 게시판에는 ‘몰이꾼 주의보’까지 내려졌다.

○ 불법 집회 누가 주도하나

이달 23일 5000여 명(경찰 추산)이 모여든 서울광장. 무대 위에서 일반 참가자들이 자유발언을 이어가고 있던 오후 7시 40분경 무대 뒤편에서는 집행부와 몰이꾼 5, 6명이 회의를 하고 있었다.

대장 격으로 보이는 30대 후반의 한 남성 몰이꾼은 “광장에서 해산하는 즉시 명동으로 갈 것이다. 경로는 그때그때 경찰 상황 보고 움직인다”고 말했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다른 몰이꾼들에게는 “선봉이 ‘다함께’ 깃발이니 잘 따라붙어라”라고 지시했다. ‘다함께’는 좌파단체로 1992년 ‘국제사회주의자들’이란 단체 명칭으로 서울고등법원에서 이적단체 판결을 받고 2001년 ‘다함께’라는 이름으로 부활했다. 주로 노동자계급 해방과 자본주의 폐지 등을 주장해 왔다.

한 시간 뒤 집회가 끝나고 참석자들이 하나둘 일어서자 집행부 중 한 명이 갑자기 마이크를 잡고 외쳤다. “여러분, 거리로 나섭시다! 행진을 통해 우리의 힘을 보여줍시다!”라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다함께’ 깃발을 쥔 깃발잡이가 도로를 향해 뛰었다. 시위대 사이 곳곳에서 확성기를 손에 든 몰이꾼들은 FTA 반대 구호를 선창했다.

갑작스러운 불법 도로 점거에 놀란 경찰이 국가인권위원회 앞을 전면 봉쇄했다. 몰이꾼들은 당황한 기색 없이 곧장 을지로 지하도로 뛰어 내려가 우왕좌왕하는 집회 참가자들에게 길을 안내했다. 한 몰이꾼은 피켓을 들고 있던 대학생들에게 “뛰지 말고 피켓 내리고, 조용히 걸어서 (지하도 밖으로) 올라가라”고 지시했다. 몰이꾼들의 지도 아래 무사히 명동 입구에 도착한 시위대는 다시 전열을 가다듬고 불법 집회를 시작했다.

○ 온라인에 퍼진 ‘몰이꾼 주의보’

이날 집회가 끝나고 주요 온라인 카페 및 포털 자유게시판에는 ‘다함께를 조심하세요’라는 경고성 글이 급속도로 퍼졌다. 글 작성자는 “‘다함께’는 FTA를 반대하는 게 아니라 자본주의 자체를 부정하는 종북단체”라며 “다함께가 나눠주는 초록색 피켓을 들고 있다가 경찰에 연행될 수 있다”고 적었다.

한 누리꾼은 “다함께는 시위를 의도적으로 격화시켜 경찰과의 충돌을 유발한다”며 “2008년 시위 때도 아무것도 모르는 대학생들을 구석으로 토끼몰이해 경찰에 연행되게 했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다른 누리꾼 역시 “22일 밤 집회가 끝나고 명동 눈스퀘어 앞에서 확성기를 든 사람이 주먹 그림이 그려진 초록색 피켓을 나눠주더니 명동성당 앞으로 몰고 갔다”며 “확성기를 든 사람은 경찰이 물대포를 쏘자마자 어느새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고 말했다. 트위터에도 주의를 당부하는 글이 많이 올라와 있다. 26일 한 트위터리안은 “일부 극단적 단체에 선동당하지 않았으면…. 폴리스라인 절대 넘지 마세요. 넘으면 님(당신) 책임”이라고 올렸다.

다함께 등 좌파단체 소속 몰이꾼들이 시위를 변질시킨다는 의혹은 이미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시위가 한창이던 2008년 5월부터 퍼져 있었다. 당시 다음 아고라 게시판에는 ‘확성기녀’(확성기를 들고 시위대를 선동하는 몰이꾼)를 주의하라는 글이 올라와 있다. 글에 따르면 100명 정도의 남녀가 집회가 시작되기 전 다함께의 상징인 주먹 그림이 그려져 있는 초록색 피켓을 나눠준다. 이 글 작성자는 “다함께는 매번 참가자들을 경찰과 대치한 막다른 곳에 몰아두고 정작 자신들은 홀연히 사라져버린다”며 “남은 참가자들만 영문도 모른 채 경찰에 연행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다함께 관계자는 “다함께를 조심하라는 글이 그렇게 많이 올라온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며 더 이상의 답변을 거부했다.

○ 경찰도 정확한 파악은 어려워

경찰은 몰이꾼들이 주로 다함께나 한국대학생연합(한대련) 등 좌파 성향이 짙은 단체 출신 인물인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다함께, 한대련 등 시위를 주도하는 단체들은 시위를 시작하기에 앞서 ‘현장투쟁전술회의’를 열고 조직별로 역할을 분담한다. 주로 다함께 쪽에서 조직적 투쟁 전술을 짜면 운동권 출신 학생 및 사회주의 사상 세력이 몰이꾼 역할을 하는 방식이다.

경찰 관계자는 “단체별로 사상에는 차이가 있지만 한나라당 퇴진과 FTA 반대라는 공동 목표를 위해 최근 힘을 합친 것으로 보인다”며 “대부분이 2008년 촛불시위 때도 참여했던 사람들로 보이나 아직까지 단체별 주요 인물이나 관계는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김태웅 기자 pibak@donga.com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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