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장ㆍ공성진 의원 비서도 "공씨 소행 알았다" 실토
송치 하루 앞두고 자백이 전부…의혹 되레 커져
10·26 재보선 당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박원순 후보 홈페이지에 대한 디도스 공격이 일단 한나라당 최구식 의원의 전 비서 공모 씨의 단독 범행이었다는 자백이 나왔다.
그러나 공씨와 박희태 국회의장의 전 비서 김모 씨, 한나라당 공성진 전 의원의 비서였던 박모 씨 등 참고인들이 말을 맞췄을 개연성 있고 `윗선'이 있지 않겠느냐는 의혹에 속 시원한 답변이 나오지 않아 과연 단독 범행인지에 대한 의심은 되레 커지는 분위기다.
이번 사건을 9일 경찰로부터 송치받을 검찰도 단독범행 자백이 무의미하다고 보고 특별수사팀을 통해 거의 재수사에 가깝게 수사한다는 방침이다.
◇`심경 변화'로 자백? = 경찰은 디도스 공격이 공씨의 소행이라는 공범들의 자백이 나오고 나서도 내내 범행을 부인하던 공씨가 `급격한 심경 변화'를 일으켜 단독 범행임을 자백했다고 밝혔지만 여전히 의구심이 남는다. 경찰은 `수사팀의 설득 결과'라고 설명하지만 설득력이 부족하다.
참고인으로 조사를 받던 김씨와 박씨 역시 그간 "선거 전날 술자리에서 디도스 이야기는 없었다"고 부인으로 일관했다.
그랬던 이들이 조사 도중 화장실을 가면서 서로 마주쳤고, 박씨가 먼저 김씨에게 "이대로 가면 우리 다 죽는다. 사실대로 얘기하라"고 말한 것을 계기로 두 사람이 "공씨가 공격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며 자백을 시작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어쨌든 김씨와 박씨가 미리 말을 맞췄다는 사실은 명백해졌다. 그렇다면 디도스공격이 이뤄지고 공씨가 검거되기 전 공씨와 김씨, 박씨 등 관련자들이 말을 맞추려는 모종의 `대책회의'가 있지 않았겠느냐는 의문이 생긴다.
사안의 중대성을 몰랐을 리 없는 이들인 만큼 적어도 경찰 조사에 대응할 방향에 관해 서로 의견을 나눴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경찰은 공씨 등 관련자들이 사전에 서로 경찰 수사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을 개연성은 배제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대책회의라고 할 만한 자리가 있었는지, 공씨도 말 맞추기에 동참했는지 등은 아직 확인하지 못한 상태다.
김씨와 공씨의 진술에 등장하는 시간대가 어긋난다는 점도 이상하다.
공씨의 지시로 선관위 홈페이지에 대한 시험 공격이 이뤄진 시각은 선거 당일 오전 1시가 넘어서였다. 공씨는 시험이 성공했음을 오전 1시40분 경 김씨에게 알렸다. 그러나 김씨는 자신이 당일 0시 경 술자리를 떠났으며 그 전에 술집 룸 화장실에서공씨에게 시험 공격 사실을 전해 듣고 만류했다고 진술했다. ◇`윗선' 정말 없나 = 한나라당 지도부나 의원실 등 `윗선'에 보고가 됐으리라는 의심도 여전히 남는다.
김씨는 선거 전날 술자리에서 "선관위를 때리삐까예(`때려버릴까요'의 경상도 사투리)?"라며 디도스 공격 의사를 밝힌 공씨를 말렸고, 선거 당일 아침 공격이 이뤄졌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이는 김씨와 공씨 모두 인정한 부분이다.
국회의장의 의전비서라면 투표일 전날과 당일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 어떤 의미인지 누구보다 잘 알았을 터다. 그런 인물이 자초지종을 상부에 보고하지 않았다는 것도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경찰은 이 부분은 아직 조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공씨가 진주에서 지인들을 만나 "나경원 의원을 도우려고 했다"거나 "내가 한 일이 아닌데 뒤집어쓰게 생겼다"는 언급을 했다는 풍문도 `배후 존재설'에 설득력을 더한다. 그러나 경찰은 아직 명쾌한 해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경찰은 이와 관련, 진주로 수사팀을 보내 탐문을 벌였고 `공씨의 진심을 가장 잘 들었을 것 같은' 인물로 공씨의 여자친구를 지목해 조사했지만 "디도스 공격에 관한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는 답변만 받았을 뿐이다.
선관위 홈페이지에 대한 새벽 시간대 디도스 공격이 공씨의 진술처럼 갑자기 생각나 바로 지시한 대로 이뤄질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좀비 PC가 많이 켜져 있는 낮시간대면 몰라도 거의 PC가 꺼져 있는 새벽 시간대에 선관위 홈페이지의 `투표소 찾기'라는 특정 항목만 공격하려면 엄청나게 많은 좀비 PC를 평소에도 확보하고 있어야 하므로 사전 준비 없이는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공씨 자백에만 의존..`꼬리'밖에 못 밝혀 = 결국 사건 송치를 불과 하루 남겨둘 때까지 경찰이 얻은 최대 수확은 공씨의 입에서 "나 혼자 했다"는 자백을 들었다는 것 뿐이다.
`한갓 9급 수행비서의 단독 범행일 리 없다'는 의혹 제기가 쏟아졌지만, 경찰은 구속되고 나서도 혐의를 부인하는 공씨와 "디도스의 디자도 못 들었다"는 김씨 등 참고인들 앞에서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형사소송법상 경찰이 피의자를 구속할 수 있는 기간은 10일밖에 안 되고 이후에는 검찰에 사건을 송치해야 해 계좌 추적 등 시일이 오래 걸리는 수사는 검찰로 공이 넘어갔다. 공씨 등 피의자들의 여죄나 추가 피의자의 존재 등이 확인되지 않는 한 경찰이 이 사건에 개입할 부분은 사실상 없는 셈이다.
경찰은 범행 당일 공씨가 통화한 친구 차모 씨를 비롯, 당시 술자리에 동석한 박씨와 검찰 수사관 출신 사업가 김모 씨, 병원장 이모 씨, 변호사 김모 씨 등을 참고인 자격으로 소환하거나 방문 조사하는 등 막판까지 수사를 멈추지 않고 있다. 그러나 산적한 의혹을 풀기엔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
배후 존재 여부 등 의혹을 충분히 해소한다면 수사권 조정을 둘러싼 검찰과의 기싸움에서 경찰이 가슴을 펼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이처럼 찜찜한 상태로 사건이 송치되면 경찰이 결국 `꼬리'밖에 밝히지 못했다는 비판이 예상된다.
경찰의 수사 능력을 질타하는 목소리와 함께 `경찰이 수사 과정에서 정치적 압력을 받은 것 아니냐'는 또 다른 배후설이 등장할 가능성도 있다.
이런 가운데 검찰은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 2부를 중심으로 40여명에 달하는 대규모 특별수사팀을 구성해 이 사건의 수사에 나설 계획이다.
검찰 관계자는 "자백만으로는 큰 의미가 없으며 물증으로 뒷받침돼야 한다"며 "공씨가 범행을 부인했더라도 상황은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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